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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물로 끝난 외국인 신부들의 ‘코리안 드림’
    ──•▶강의 자료방/다문화 이해하기 2009. 3. 15. 10:16
    이민여성의 자식, 이혼가정의 아들, 혼혈아…. ‘미국 수퍼볼 스타’ 하인스 워드는 성공 직전까지 이런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그는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편 하나 믿고 미국 이민길에 오른 어머니 김영희(62)씨는 이혼 후 아들의 양육권을 남편에게 빼앗겼다. 아들이 일곱 살 되던 해에야 어렵게 양육권을 되찾았다. 그 사이 모자는 꼼짝없이 이산가족으로 지내야 했다. 김씨의 스토리는 6·25 전쟁 직후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조국을 등진 수많은 한국 여성의 신산한 삶을 대변한다. 낯선 사회에서 그들은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인종적 편견은 물론 평생 언어적·문화적 이질감에 시달려야 했다.

    불과 50여년 만에 사정은 달라졌다. 한 남자에 의지해 아무 연고 없는 미국 땅을 밟았던 당시 한국 여성처럼 이젠 외국, 특히 아시아계 여성이 한국 남성을 좇아 우리나라를 찾고 있는 것. 달라진 게 있다면 이들의 결혼엔 사랑 이외의 ‘옵션’, 즉 돈이 더해진다는 점이다. 일정액을 지불하면 결혼을 성사시켜주는 브로커의 존재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결혼’의 폐해는 심각하다. 한국인 남편의 상당수는 외국인 아내를 함부로 다루고 가정폭력과 부부갈등은 끊이지 않는다. 이대론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아내가 이혼을 결심하는 순간 문제는 부부뿐 아니라 자녀에게까지 증폭된다.

    이렇다할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여성이 월 100만원 전후의 비정규직에 투입되며 자녀는 사각지대에 놓인다. 재정적 어려움은 둘째치고 일정치 않은 근무시간은 홀로 방치되는 자녀들을 대거 양산한다. 이들의 최종 행로는 기껏해야 이주여성의 친정 혹은 보육원. 사회적 편견은 이주여성의 자녀에게 가해지는 또 하나의 폭력이다. 특히 언론은 이들을 그저 ‘부모 잘못 만나 고생하는 딱한 아이’ ‘정체성 찾지 못해 방황하는 잠재적 문제아’ 정도로 비춘다. 정말 그럴까? 한국인 남성과 이주여성 간 국제이혼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수소문했다. 이주여성과 그 자녀를 둘러싼 각종 사회 실태와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가의 혜안도 함께 짚었다.
    ▲ 엄마와 함께 실로폰 연주를 하며 주말을 보내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조선일보 DB

    한 해 3만명 결혼, 5800명 이혼
    길거리로 내몰리는 결혼이주여성

    이혼 6년 만에 3배 늘어… 자녀 있는 경우도 13%
    콜센터 상담 연 3만3000건, 가정폭력 호소만 3900건

    경기도에서 유통업을 하고 있는 이종진(가명·36)씨는 한국 여성과의 결혼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세 차례 맞선 당시의 끔찍한 기억 때문이다. 결국 그는 얼마 전 모 국제결혼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연봉, 집안, 학벌…. 한국 여자들은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아 맞추기 까다롭더군요. 자존심도 상하고요. 어쨌거나 이젠 가정을 꾸리고 싶습니다. 참한 아가씨라면 국적이 달라도 상관없어요.”

    필리핀 여성 A씨는 최근 한국 남성과의 국제결혼을 결심했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앳된 외모의 그는 한국에 오려고 다니던 대학까지 휴학했다. 2년 전 한국으로 시집 온 친구 B씨의 결혼생활 영향이 컸다. B씨보다 열 살 위인 남편은 결혼 후 필리핀에 매월 20만원씩 부쳐 처가 살림을 도왔다. B씨는 결혼 초 언어장벽으로 고생했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며 한국말이 부쩍 늘었다. 평소 한국 드라마 속 다정다감한 남성상을 동경해온 A씨는 친구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한국행을 선택했다.

    국제결혼이 일반화하면서 가족과 가정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국제결혼의 결과로 탄생한 가정을 일컫는 ‘다(多)문화가정’이란 말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현재 국제혼인 건수는 약 4만건. 전체의 11%에 해당한다. 대략 9쌍 중 1쌍은 국제커플인 셈이다. 이는 2000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혼기를 놓친 농어촌 총각의 경우 외국인 신부와 결혼을 한 경우는 40%에 이를 만큼 국제결혼이 흔해졌다.

    한국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 입국하는 대부분의 이주여성은 ‘지금보다 나은 삶’을 꿈꾼다. 아내·엄마·며느리로서의 부담을 기꺼이 감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앞에 펼쳐진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지난해 사단법인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콜센터(국번 없이 1366)엔 총 3만3550건(중복체크)의 불만사례가 접수됐다. 언어갈등(34.7%), 이혼수속과 양육권 분쟁 등 법률문제(20.4%), 고부갈등을 포함한 시댁식구와의 문제(18.0%), 체류기한 연장을 둘러싼 문제(16.0%), 부부갈등(11.7%), 가정폭력(11.6%), 가출(5.3%) 순이었다. 대부분의 피상담자가 언어갈등 외에 추가 문제를 한두 가지씩 갖고 있었다. 특히 가정폭력은 배우자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가담한 경우가 많았다.

    “아빠가 찾아올까 봐 무서워요.” 초등생 김윤주(가명·8)양은 필리핀인 엄마 D(35)씨와 한국인 아빠를 뒀다. D씨는 8년간 계속된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한국가정상담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가 센터에 ‘증거자료’로 제시한 사진 속 인물은 D씨가 아니었다. 시퍼런 멍이 얼굴 전체를 뒤덮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여성이 있을 뿐이었다.

    지난해 6월 그는 센터 측 도움을 받아 남편을 상대로 법원에 ‘100m 접근금지’를 요청했다. 이혼소송도 제기했다.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는 D씨는 “한국 국적도 취득했고 계약직으로 미군에 일자리도 얻었다”며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이들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게 쉽지 않겠지만 끝까지 책임질 생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주여성 앞에 놓인 또 하나의 난관은 국적 취득이다. 현 제도상 외국인이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체류하려면 국적 취득이 필수다. 그러나 이주여성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건 그리 쉽지 않다. 최초 취득 신청 시 남편의 보증이 필요하고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비자신청권 역시 남편이 갖는다. 결혼 후 2년이 지나면 국적을 신청할 수 있지만 그나마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취득기한이 2~4년 늦춰진다. 아이가 있어도 1년은 지나야 승인이 떨어진다. 국적 취득 전 이혼하면 체류자격은 박탈된다. 이혼사유가 자신에게 있으면 체류기간 연장도 불가능하다. 다만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했을 땐 3개월 더 머물 수 있다. 한국 국적자가 보증을 서면 3개월 추가체류도 가능하다. 외국인 아내의 체류 전반을 남편이 좌우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이주여성을 더욱 주눅들게 한다. 결혼 3년차 이주여성인 중국인 Y씨는 “늘 남편의 눈치를 보며 하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가 누적되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던 국제결혼 건수는 2005년 이후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반면 국제이혼 건수는 2004년 3000건이었던 게 2007년 9000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통계청). 특히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아내 간 이혼은 2001년 1600건에서 2007년 5800건으로 평균치를 훨씬 웃돌았다. 몇년 새 급증한 국제이혼은 서서히 사회문제로 표면화되고 있다. 2007년 현재 이혼한 국제커플의 평균 동거기간은 3.3년.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이혼한 건수(781건)도 2004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이혼한 이주여성’이란 이중의 굴레는 이들의 사회 자립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어가 서툴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들은 설상가상으로 한국 실정을 잘 모른 채 불리한 조건에서 이혼, 양육비 한푼 못 받고 자녀를 떠안기도 한다. 궁지에 몰린 이들을 위한 지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보건복지가족부 다문화가정과 관계자는 “결혼이민 예정자 대상 오리엔테이션과 결혼준비교육 등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며 “다문화가정 자녀들도 무지개청소년센터에서 이뤄지는 상담 프로그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일부 프로그램만으로 늘어나는 국제이혼율을 막긴 역부족”이라며 “정부정책을 뛰어 넘는 사회 전체의 관심과 협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국제결혼, 어떻게 성사되나 |

    첫 만남부터 결혼식까지 1주일
    알선업체 500만~1500만원 요구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한 여성’ ‘○○보다 싼 가격으로 결혼하세요’…. 국제결혼 알선업체들은 하나같이 달콤한 문구를 내세워 자사 서비스를 강조한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업체는 대부분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초기 화면은 젊은 여성의 프로필로 나열돼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신붓감의 후보국은 업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러시아 순으로 많다. 한 업체 관계자는 “30대 초혼 남성은 20대 초반 여성을 선호하고 40~50대 재혼 남성도 20대 중반의 여성을 원하는 경우가 많아 젊은 여성 위주로 게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결혼을 결심한 남성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마음에 드는 결혼 알선업체를 고른 후 돈을 건네는 것. 왕복 항공료와 숙박비, 통역비, 맞선 진행비, 결혼 예식비 등 20여가지 명목으로 이들이 업체 측에 지불하는 돈은 최소 500만원에서 최대 1500만원에 이른다. 대부분의 맞선남은 현지에 도착, 여러 명을 만나본 후 즉석에서 신붓감을 선택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결혼 성사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남성에게 있는 것이다. 첫 만남부터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불과 7일. 2~3개월 후 혼인증명서가 나오면 입국사증을 발급 받아 신부가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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