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 하룻밤, 경북 안동 농암종택 | |
가슴 속 자물쇠가 절로 열리는구나 | |
상상만으로 한없이 여유로운 시간. 바캉스특집 그 네 번째, 이번에는 고택이다. 둘러볼 만한 고택이야 많지만 정작 머물 수 있는 고택은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안동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찾아보면 안동에는 여행객들을 위해 잠자리를 내어주는 고택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치가 뛰어난 곳에 자리한 것이 바로 농암종택이다. 앞으로는 낙동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뒤로는 청량산이 우뚝 버티고 있는 배산임수의 최고 길지. 자 떠나볼까. 그 옛날 선비 집으로의 하룻밤 여행.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농암 이현보(1467~1555)가 나고 자란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그의 자손들이 5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다. 집은 농암이 태어나기 훨씬 전인 1370년 무렵에 지어졌다.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 별채, 문간채로 구성된 본채 외에 긍구당, 명농당 등의 별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택에서 왼쪽으로 1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농암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분강서원이 있다.
농암종택이 자리한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는 세상의 시름을 잊고 자연과 벗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안동에서 봉화 방면으로 35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도산서원을 지나 오른쪽으로 난 작은 길을 타고 2㎞가량 더 들어가면 농암종택이 나온다. 푸르디푸른 청량산이다. 이 길에서 조금 들어가면 왼쪽으로 강 너머 벼랑 아래에 정자 하나가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고산정이다. 고산정은 조선 중기의 문인 성성재 금난수가 1564년에 지은 정자. 퇴계 이황도 자주 이곳을 찾아 시조를 즐겼을 만큼 운치가 빼어나다. 오른쪽에 큰 고택이 보인다. 바로 농암종택이다. 종택 앞 주차장에는 이미 여러 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다.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피난을 온 사람들의 것이다. 숙박 가능한 방이 많다. 농암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안채를 제외하고 모든 곳에서 숙박가능하다. 뜨거운 여름 한낮에 종택에 도착했으나 무료하기 짝이 없다. 마치 정서불안처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대청마루에 그냥 누워버린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다. 이 찌는 듯한 오후, 종택에서 할 일이란 솔솔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늘어지게 한숨 자는 것뿐이다. 낙동강의 상류 지역인 종택 앞 강변은 물이 차고 무척 깨끗하다. 물살이 세지도 않고 또한 깊지도 않아서 물놀이를 하기에 적당하다. 문밖에서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정겹다. TV를 끄고, 컴퓨터를 끄고, 또한 모든 신경을 끄고 누운 두어 평 남짓한 황토방. 대신 두런두런 이야기소리가 밤새 이어진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해가 떠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다. 그 안개 속에서 강변산책로를 따라 걷는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종택으로 들어올 때는 도산서원을 지나왔지만 만약 차가 없다면 종택에서 반대편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권하고 싶다. 퇴계 이황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예찬했던 바로 그 오솔길이다. ‘예던길’이라고도 하고 ‘녀던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던길의 일부지만, 그 운치는 농암종택에서 학소대, 한속담, 경암, 미천장담을 지나 백운지교로 이어지는 길에는 미치지 못한다. 길을 걷다보면 낙동강을 따라 산줄기가 장쾌히 흐르고 강변에는 조약돌이 넓게 깔려 있다. 길섶으로는 나리꽃과 코스모스가 그득 피어 있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흙의 감촉이 보드랍다. 한편 길이 끝나는 곳 주변에는 퇴계종택과 도산서원, 이육사 생가 등 둘러볼 만한 곳들이 많다. 모처럼 만의 휴가, 역사의 숨결을 한껏 들이마시고 오는 것도 또 하나의 재충전이 아닌가 싶다. 그중 특히 양반밥상(054-855-9905)이 유명하다. 간고등어구이와 조림이 함께 나온다. 양반밥상 옆에는 까치구멍집(054-855-1056)이라는 헛제사밥 전문 토속음식점이 있다. 제사상에 오르는 각종 나물을 대접에 놓고 공기밥에 깨소금이 들어간 조선간장에 비벼먹는다. 안동은 찜닭 열풍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구시장 안에 찜닭집들이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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