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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폭력에 대한 대상관계론적 접근
    ──•▶심리 자료방/상담, 심리, 다양한 연구결과 2010. 3. 27. 07:22

     

     

    가정폭력에 대한 대상관계론적 접근


    들어가는 말

    1. 왜 학대하는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가?

    1.1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1.2 나쁜 대상에 대한 집착

    2. 무엇 때문에 심리발달이 방해받는가?

    2.1 심리적 탄생(psychological birth)에 이르는 과정

    2.2 좋은-어머니-함입의 부족(introjective insufficiency)과 그 결과

    3. 지속적인 학대와 유기를 경험한 어린이의 생존전략과 그 결과

    3.1 “나쁜 나” 만들기

    3.2 취약한 자기 발달

    3.2.1 통합의 실패: 분열(splitting)

    3.2.2 낮은 긴장내성과 충동억제력(low tension tolerance & impulse control)

    3.2.3 정서적 애착 결핍과 지나친 의존

    4. 학대받는 여성의 두 가지 방어: 도덕방어와 분열방어(moral defense & splitting defense)

    5.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5.1 우선적 과제: 긍정적 함입

    5.2 흥분시키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 ‘좋은 대상’으로서 양육하기, 그리고 분화될 수 있도록 촉진시키기


    들어가는 말


    유기체는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을 선호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외적환경 뿐만 아니라, 심리내적 환경, 즉 내적현실(internal reality)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관계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 현실에도 이러한 가정을 적용시켜본다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망하게 되는 ‘좋은 환경’에 관한 정의는, 성장과 발전적 변화를 줄 수 있는 관계적 환경일 것이라는 상식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고통스럽고 긴장된 정서를 맛보게 하는 관계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안정된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기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상식적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무의식적인 선호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 마음의 비밀을 탐구한다는 것은 결국 이러한 선호경향을 탐구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 마음의 시작은 언제나 과거이다. 인간은 자신을 잉태한 어머니의 태내(胎內)에서부터 그 어머니와의 상호작용을 가지게 되며, 출생 후에는 ‘그 어머니다운’ 양육을 받아, ‘그 어머니가 길러 낸 자녀’만이 가질 수 있는 특이한 내적현실의 지도를 마음 안에 인각시키게 된다. 이제 그는 생애 전체를 통해 자신이 선호하여 유지하려는 물리적․심리적 환경의 설계도(blueprint)를 갖게 된 것이다. 그는 언제나 이 설계도에 기초하여 환경을 조성하려 할 것이다. 각 개인의 고유한 마음의 설계도를 확인하여, 이를 교정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 한, 인간의 내면세계에 개입하려고 하는 전문적인 노력들은 허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비근한 예로, 청소년들에게 더 좋은 친구들, 더 건전한 교우관계와 과외활동을 권하는 것이 의도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때가 많은 이유는, 그들이 그들 자신의 고유한 설계도에 따라 환경과 친구들을 선택하고 그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인격적 성숙과 자기실현이라는 가치와 당위성을 역설하거나 교육하는 데에 더 큰 강조점을 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의 설계도는 무의식의 영역에 각인되어 있으며, 의식적인 노력에 거슬러 작용하는 엄청난 추동력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특정한 환경을 선택하거나 조성해가도록 힘을 가하는 각 개인의 심리내부에 그려져 있는 설계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폭력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부부들이 상대 배우자를 선택하고, 가족생활을 이끌어가는 도중에 불가피하게도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폭력이 발생하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허물어 버린다거나, 그곳에서 떠나지 않고, 폭력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는 현상을 탐구하려는 노력에는, 폭력에 참여하는 부부의 무의식에 새겨져있는 마음 설계도에 관한 이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1. 왜 학대하는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가


    1.1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인간의 심리라는 비가시적인 구조물이 결국은 관계를 통해 확립되는 것이고 보면, 고전 정신 분석가들도 내담자들의 관계 맺기 유형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그들 마음에 이미 인각되어 있는 관계 설계도에 준해서 ‘의미 있는 타자들(significant others)’을 선택한다. 프로이드도 대상선택(object-choice)의유형에 관심을 보이면서 배우자 선택의 두 가지 유형을 anaclitic(anaclitic: of or related to relationships that are characterized by the strong dependence of one person on another) object-choice와 narcissistic object-choice로 나누어 설명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 어머니가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었듯이, 어머니나 아버지와 같은 부모인물을 배우자로 선택하게 되어, 부모의 대체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배우자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anaclitic object-choice처럼 어머니나 아버지와 같은 인물을 배우자로 찾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narcissistic object-choice의 경우처럼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애욕적 에너지(libidinal energy)를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로이드는 이런 대상을 선택하는 경우로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과 자녀에 대해 강한 집착(attachment)을 보여주는 부모를 예로 들고 있다. 분석에서 드러나는 ‘타자’를 향한 이끌림에 관한 연구에서 프로이드는 자신을 거부했던 부모와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거부하는 배우자나 친구 그리고 연인을 선택하거나,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리게 되는 현상을 피분석자들이 보여주는 것에 주목하면서, 쾌락원칙에 위배되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을 ‘반복강박’으로 설명하고 있다.

    프로이드의 본능 이론이 “쾌락원칙”을 제안했을 때, 당시 세계대전을 경험했던 많은 대중들은, 프로이드의 주장대로 인간본성이 진정으로 쾌락을 추구한다면, 전쟁터의 끔찍한 장면들을 반복해서 꿈꾸는 현상, 그렇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고통을 반복해서 맛보게 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관해 비난에 찬 질문을 던졌었다. 프로이드는 한 인간의 정신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외상(trauma), 다시 말해서, 일정한 시간 내에 엄청난 양의 정신에너지를 투자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건들이 꿈속에서 반복적으로 재연(reenact)됨으로써, 최초에 그 사건을 경험했을 때 축적되었던 흥분(불안)이 조금씩 상쇄되어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결국 외상이 되었던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재연하는 것은, 유기체가 외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그 외상에 대한 내성을 형성하게 되어, 결국은 내적 균형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적극적인 시도라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1920)에서 환자들이 아동기의 미해결된 외상적(traumatic) 상황,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 노력을 하고 있음을 소개하면서, 그 환자들이 마치 “악의에 찬 운명이나 악마의 힘에 사로잡힌”것처럼 보인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Remembering, repeating, and working through thoughts"(1914)에서, 전이(transference)를 통해 드러나는 그러한 환자들의 반복강박의 행동들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쾌락원칙에 모순되는 이러한 인간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내놓은 새로운 본능 개념이 바로 ‘죽음 본능’이었고, 죽음 본능은 미리 정해져있는 어떤 방식으로 유기체를 죽음으로 몰아간다고 가정했다.


    1.2 나쁜 대상에 대한 집착


    Freud가 유기체는 ‘반복강박’을 통하여 외상(trauma)의 충격을 숙달(master)하여 불안과 긴장의 수준을 낮추려고 한다고 설명하면서 ‘반복강박’ 현상이 가지는 무의식적 이득에 집중했던 한편, Fairbairn은 원래의 나쁜 대상(the original bad object)에게로 되돌아가는 강박적이며 파괴적인 실제 애착관계에 더 많이 집중하였다. 그는 고아원에서 버림받고 학대받은 아동들과 환자들을 관찰하면서 환자들이 자신을 학대하고 방치했던 원래의 나쁜 대상에게로 되돌아가거나 혹은 그 나쁜 원래 대상과 (상징적으로) 동일한 인물에게로 강한 매력을 느끼는 현상을 보인다고 보고하면서, 이는 병리적으로 형성된 그들의 무의식적 심리구조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생후 최초로 만나게 되는 첫 대상인 양육자와의 애착은 성격발달의 결정적인 요소이므로, 성인이 되어서도 원대상과 가졌던 똑같은 애착 방식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Fairbairn의 보고에 따르면, 어머니로부터 학대받은 아이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아이들보다 어머니에게 더 집착한다. 더 많이 학대받은 아이들일수록 자신을 학대한 어머니에게 더 집착한다는 것이다. 생리적․심리적 공급을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영아들에게 어머니에 대한 의존은 생사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필요성은 그만큼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그 어머니가 좋은 어머니이든, 나쁜 어머니이든, 그들에게는 어머니가 필요할 뿐이며, 그 어머니가 아무리 나쁜 어머니라 하더라도 그들의 심리내부에 내면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괴적인 대상을 향한 강한 집착은 가정폭력의 피학대 배우자가 학대 배우자에게 보여주는 강한 집착과 연관시켜볼 수 있다. 가정폭력으로 의뢰되거나 자발적으로 방문해오는 내담자들을 만나보면, 그들에게 특이한 공통적 패턴이 있음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그들 부부가 반복적으로 폭력을 주고받는다는 것과, 주로 폭력을 당하는 쪽인 여성배우자들이 폭행을 일삼는 배우자에게로 또다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물론 현재 한국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열악한 경제적 위치, 그리고 여성들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법적 제도를 모두 원인론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 있는 원인을 각 개인의 심리내적 영역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한다면, 학대받았던 어린이가 성장하여 자신을 학대하는 배우자를 선택하게 되고, 그 배우자에게서 학대를 받으면서도 그 학대자에게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은,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거쳐 무의식에 깊이 새겨져있는 그들의 ‘대상관계’임을 알 수 있게 된다.


    2. 무엇 때문에 심리발달이 방해받는가?


    2.1 심리적 탄생(psychological birth)에 이르는 과정


    Freud와 Fairbairn은 모두 생애 초기의 양육자와의 애착(attachment)형태에 주목하고 있다. 양육자와의 관계를 인간 심리 발달의 초석으로 삼고 있는 대상관계이론가들이 제시하는 발달과정을 개괄해보면, 학대를 주고받는 배우자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경향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대상관계는 인간이 자신의 ‘양육자와 맺는 관계’를 일컫는 말이며, 동시에, 인간의 심리 내면세계(the internal world)를 일컫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 내면의 세계에는,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갖게 되는 양육자 대한 이미지(image; representation)와, 양육자의 이미지에 대응하여 생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쌍을 이루어 내면화 된다. 이렇게 서로 쌍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축적되어 심리구조로서 기능하게 되며 결국 한 개인의 자기구조(self-structure)를 형성하게 된다. 대상관계는 인간이 성장하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타자들’과의 관계 유형을 결정하는 일종의 설계도(draft)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심리내면에 저장되어있는 대상관계의 질이 좋으면, 개인의 심리내적인 장치(endopsychic apparatus) 또한 건강하게 기능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어머니’로 대표하여 부르는 양육자는 어떤 임상실천가가 “母神”이라고 부를 만큼 한 인간의 성장과 행복에 지대한 힘을 행사한다. 건강한 자아와 성숙하고 풍부한 정서적 상태를 확립한 양육자의 돌봄(care-giving)으로 인하여, 인간은 출생 후 양육자와의 의존적 결속(dependent bond)에서 벗어나 상호성(mutuality)과 자율성(autonomy)을 가진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즉,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enough-mother)’에 의한 양육을 거치면, 인간은 생애초기의 자폐적 상태(autistic state)를 무사히 통과하여 벗어나게 되고, 이후 ‘공생(共生)’이라고 부를 정도로 어머니의 타자성과 경계 없는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그로부터 경험한 충분한 사랑과 정서적 지지를 일종의 정신에너지(psychic energy)로 심리저장고에 채우고 나면, 서서히 어머니로부터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분리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게 되면서 개체성(individuality)을 획득하고, 자율성(autonomy)을 쟁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숙(maturation)과 독립이라는 발달과업(developmental task)은 대략 생후 36개월경에 대상항구성(object constancy)이 생기면서, 어머니를 마음속에 내면화하게 되고(internalize), 외부 환경에 어머니가 부재하는 경우에도 언제든지 자신의 내부현실로 어머니를 불러올 수 있게 된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기억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상관계이론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발달을 이러한 과정으로 설명하며, 대상항구성이 확립될 무렵에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정체감을 형성(identity formation)하게 된다.


    2.2 좋은-어머니-함입의 부족(introjective insufficiency)과 그 결과


    어머니의 따뜻한 어루만짐은 어린이의 정신내부에 에너지로 저장된다. 어머니의 시기적절한 돌봄과 정서적인 어루만짐이 충분해서, 영아가 ‘좋은 느낌’을 가지게 되는 상호작용을 많이 하게 되면, ‘좋은 어머니’의 이미지가 ‘좋은 나’의 이미지와 한 쌍이 되어 심리내부에 함입된다. 그리고 이러한 좋은 어머니에 대한 함입이 충분히 축적되면Mahler가 격리개별(separation & individuation)의 완성 지표로 설명했던 ‘대상항구성’이 생기게 된다. 즉, 좋은 어머니,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힘을 주는 어머니가, 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는 신뢰가 생긴다는 것이다. 외부 타자에 대한 이러한 신뢰와 더불어 자기 자신에 대한 뚜렷한 감각(sense of self)과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생기게 되면, 어린이는 마침내 자율성을 얻게 되고, 어머니로부터 받게 될 사랑과 인정 그리고 지지에 더 이상 목 맬 필요 없이 자유롭게 세상을 탐구하고, 자기를 실현하는 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좋은 어머니에 대한 함입이 부족하면, 아동은 생애 전체를 통해 어머니부터 받지 못한 사랑에 매달리게 되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성인기에는 어머니를 상징할만한 외부대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어려움을 겪으며, 유기불안(abandonment anxiety)에 시달리는 이들의 내면세계는 언제나 고독하고 공허해서,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도 그 사람이 배우자로서 적절한가 적절하지 못한가에 관한 현실적 기준을 고려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언제나 텅 비어 있는 내면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워줄 대상에 대한 욕구가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자로서 적절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도 이들은 관심을 끌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내면에 인각되어 있는 방치되고 좌절되었던 어머니와의 상호작용 때문에 끊임없는 유기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3. 지속적인 학대와 유기를 경험한 어린이의 생존전략과 그 결과


    3.1 “나쁜 나” 만들기


    어린이가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부모로부터 지속적인 학대와 방치를 경험한다면 그 어린이의 세계는 절망 자체일 것이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갑작스러운 폭력을 경험해야 하며, 자신들의 절망과 공허감을 채우기에 급급한 부모로부터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어린이들에게 세상은 질서 없이 혼란스러우며 예측을 불허하는 공포의 공간일 것이다. 이런 세상에는 어린이 자신이 성장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희망의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어린이는 자신의 불가항력적인 절망의 세계에 작은 희망의 환상이라도 유보해두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자기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어린이 자신이 나빠서 매 맞고 버림받는 것이며, 자신에게 학대를 일삼는 양육자나 부모는 ‘내가 나쁜 짓을 할 때만’ 나를 학대하는 ‘공정하고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비록 자기 자신은 나쁜 아이지만 훌륭한 부모 밑에서 산다고 생각할 때 부모에 대한 아동의 절대적 의존성은 침해받지 않게 된다.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고정시켜두어야만, 끝없는 폭력과 정서적 냉담으로 가득 차 있는 아동 자신의 미래에 한 가닥 희망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방어로서 생길 수밖에 없는 환상이다.

    이렇게 해서, 학대받는 어린이는 부모를 원망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책망하면서 오히려 희망을 갖게 되고, 나쁘게만 돌아가는 모든 상황들을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으로 돌려버림으로써 부모의 학대를 정당화시키게 된다. 나쁜 대상에 대한 이러한 도덕방어(moral defense)는 성인기에 배우자로부터 받게 되는 학대를 직면했을 때 다시 활용된다.


    3.2 취약한 자기 발달


    생후 최초로 가지게 되는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은 영아의 심리 내부에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이 흔적의 편린들이 모여 심리구조가 된다. 이 파편들은 대상과의 일회적 관계에서 영아가 가지게 되는 느낌(affect)으로 연결되는 영아의 자기이미지와 양육자에 대한 대상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수많은 단편들이 심리내부에 축적되는 것이다.

    Fairbairn의 공식에 따르면, 영아를 만족시킴으로써 좋은 느낌을 주는 대상관계단위(object relations unit)들은 의식의 영역인 중심자아(central ego)부분에 저장되고, 영아를 좌절시킴으로써 나쁜 느낌을 불러일으켰던 대상관계단위들은 무의식의 영역인 애욕적자아(libidinal ego)와 항애욕적자아(anti-libidinal ego)부분에 억압되어 저장된다. 결과적으로, 의식부분에 좋은 대상관계 단위들이 많이 축적되면, 자기감이 공고해지고, 자아가 건강하게 현실을 처리해낼 수 있게 되지만, 무의식 영역에 저장되는 축적물들이 많을수록, 아동은 자신의 행동과 느낌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며,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느낌과 충동에 지배당하게 된다.


    3.2.1 통합의 실패: 분열(splitting)


    심리적으로 성숙해 간다는 것은 양육자와 외부세계를 ‘전적으로 좋은 것(all good)’과 ‘전적으로 나쁜 것(all bad)’으로 구분지어 놓고, 한 대상이 지니고 있는 좋고 나쁜 두 부분을 동시적으로 통합시켜 인식하지 못하는 유아기의 분열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분열에서 통합(integration)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과정이 아니며, 좋은 어머니의 함입이 많이 축적되어 있어야 가능하게 되는 성숙과정이다.

    Melanie Klein에 따르면, 분열은 영아가 ‘편집-정신분열 위치(paranoid-schizoid position)’에 있을 때, ‘만족 시키는 좋은 젖가슴’과 ‘좌절 시키는 나쁜 젖가슴’을 함입하면서, 이 두개의 서로 다른 부분대상들을 함께 두게 되면 나쁜 젖가슴에 의해 좋은 젖가슴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anxiety)이 생기면서 적극적으로 하게 되는 방어이다. 나쁜 젖가슴의 합입이 증가할수록, 자아는 분열방어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그나마 소량으로 축적되어 있는 좋은 젖가슴을 보호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고, 그렇게 자아의 분열이 지속되면 자아는 그 응집력(cohesiveness)을 잃게 되어, 양육자와 자기와 외부세계에 대한 전체적이고 통합된 인식을 발달시킬 수 없게 된다.

    분열방어는 어린이의 내면에 어머니에 대한 좋은 어머니, 나쁜 어머니의 두 상반된 인식을 따로 분리시켜 둘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좋은 자기와 나쁜 자기도 분리시켜 두게 한다. 어머니가 자신을 만족시켜 줄 때 어린이의 자기감은 좋은 것으로 경험되고, 나쁜 자기에 대한 모든 기억들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억압되어 버린다. 반대로 어머니가 거부적이거나, 어린이 자신의 욕구에 따라 어머니를 사용할 수 없을 때, 아동의 자기감은 무가치하고 나쁜 것으로 경험되며, 자기에 대한 모든 좋은 기억들은 무의식속으로 추방되어 버린다. 하나의 부분 자기가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와서 활동하면, 다른 부분자기는 무의식의 지대에 갇혀 완전히 망각된다.

    안정되어 있지 못한 자기감과 세상에 대한 느낌, 일관적이지 못한 정서적 상태와 행동들은 모두 분열이라는 유아기적 방어가 아직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3.2.2 낮은 긴장내성과 충동억제력(low tension tolerance & impulse control)


    현실의 모든 자극들을 어떻게 인지하며, 어떻게 해석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행동화하고 처리할 것인가는 건강한 자아가 판단하고 기능하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어머니 함입 부족으로, 불안을 방어하는 데에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소비해버리게 되면, 자아는 현실을 거래하는데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할 다른 기능들을 수행해 낼 수 없게 된다.

    이들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사건들,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긴장과 좌절을 내적으로 감당해 낼 수가 없기 때문에, 행동화(acting out)와 같은 원시적인 방어를 사용해서 긴장을 방출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행동화를 통해 우선의 긴장을 방출하게 되었지만, 그 긴장이 생기게 된 원래 이유나 그것과 관련되어 생기는 자신의 정서적 상황에 대해서는 통찰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원시적인 방어에 지속적으로 의존하게 됨으로써 행동화를 한 사람은 자신이 왜 그런 행위를 했는지, 그렇게 하기까지 어떤 감정의 변화를 거쳤는지 의식해낼 수도 없게 된다.

    폭력을 일삼는 남성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행동화의 형태가 직접적인 신체공격이다. 증오와 공격성은 욕구좌절에서 기인하는 반응이며, 박탈감을 자주 경험하면서 자라나게 되는 아동은 욕구가 만족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분노를, 아직 충족되지 않은 욕구에 대해서는 의존성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따라서 심각한 박탈을 자주 경험한 아동은 분노에 차 있으며 동시에 의존적인 성인으로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와 의존성의 결합은 그 성인을 폭발하기 쉬운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어버리는데, 폭발하기 쉬운 어른으로 성장한 남성이 배우자로부터 또 다른 좌절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의 배우자를 ‘전적으로 나쁜(all bad)’ 대상으로 경험하게 되고, 그로인한 긴장이 급증하면 신체적 폭력이라는 행동화를 단행하게 되며, 그러면서도 폭행을 가하는 순간에는 공격받는 배우자가 지니고 있는 다른 좋은 면을 회상해낸다거나, 배우자에 대한 연민이나 죄의식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신의 공격적 행동을 정당화하게 된다. 출생 이후 줄곧 경험해온 수천 만 번의 좌절의 기억들이 그의 심리내부에서 공격성을 불태우는 연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을 교환하는 부부들의 공통된 특성 중에는 충동성이 포함된다. 내부에서 올라오는 충동을 참아내려면, ‘참고 기다렸더니, 내가 원하는 바가 충족되었다’라는 실제적 경험에 기반을 둔, 대상에 대한 신뢰와 자신을 향해 호의적(好意的)인 세상 그리고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생애 초기부터 부적절한 양육을 받아 온 아동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자신들의 욕구는 충족되지 않았음을 경험을 통해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기분을 만족시켜주는 활동에 몰입하게 된다. 폭행을 일삼는 배우자가 술이나 약물에 중독 되어 있다거나, 혹은 유별나게 집착하고 있는 취미생활을 가지고 있음은 취약한 자아의 낮은 긴장내성 그리고 약한 충동억제력과 연관이 있다.



    3.2.3 친밀한 정서적 애착 결핍과 지나친 의존


    Bowlby는 그의 연구를 통해서 학대받은 아동들은 다른 또래들이 곤경에 처해있을 때 그들을 구하고자 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돌보는데 가장 적극적이었던 아동들은 자신들의 욕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주는 어머니의 양육을 받았던 아동들이었다는 것이다. 학대받으며 어른으로 성장한 사람들의 대인관계에는 양립될 수 없는 두 극단의 현상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누군가를 몹시도 필요로 하면서, 정작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가족들이나 자녀들과는 깊은 공감을 형성할 수 없다. 사랑받아 본 경험이 부재하거나, 부모로부터 다정한 정서적 돌봄을 받아보지 못한 성인은 어른이 된 후에도 가족에 대한 정서적 애착을 발달시키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애착이 결여되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정서적 욕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타인에게 매달리는 애착을 보여주지만, 그 애착은 아동기의 미성숙한 욕구에 기반을 둔 것이므로 성숙한 관계를 가질 수는 없게 된다.

    그런데 폭력을 주고받는 부부들에게도 이러한 양립할 수 없는 두 패턴의 대인관계양상이 역할분담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흔하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학대하는 남편과,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의존적인 아내가 만나게 되면, 유아기부터 충족시키지 못했던 그들의 욕구를 상대방 배우자들을 통해 충족시키려고, 남편은 완력을 행사하고, 아내는 강해보이는 독립형 남편을 통해 자신의 내적 허약함을 채워보려고 한다. 얼핏 보면, 한쪽은 공격하고 거부하며, 다른 쪽은 공격하고 거부하는 배우자게 매달린다.


    4. 학대받는 여성의 두 가지 방어: 도덕방어와 분열방어


    학대받는 부인이 학대하는 남편과의 애착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두 가지 주된 방어가 있다. 이는 학대받는 아동들과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모와 지속시키는 애착관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도덕방어는 학대받는 여성들이 자신들이 받는 학대에 관한 나름대로의 논리를 제시함으로써, 학대자의 학대를 정당화시키는 인지방어이다. 도덕방어는 학대받고 방치된 그들의 심리내적 세계에 거짓 안정감을 제공해주며, 학대하는 부모나 배우자를 정당화시킴으로써 혼란스러운 그들의 내면세계에 질서감을 부여해준다. 그리고 학대받는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할 때, 그들 자신의 노력으로 그가 속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환상적 희망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분열방어는 학대받는 사람들이 그들의 자아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학대하는 사람 곁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하는 방어이다. 학대받는 여성들과의 임상경험이 많았던 Celani는 학대받는 여성들의 파편화된 심리구조를 학대자기(Abused Self)와 희망자기(Hopeful Self)라 명명하고, 이 분열되어 있는 두 부분이 번갈아가며 의식수준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학대자기는 대상이 아동을 좌절시킬 때 마다 가지게 되는 아동의 정서적 경험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학대자기는 괴로움, 냉소, 자기 파괴적 증오, 그러면서도 자신을 학대하고 방치했던 부모의 가학적인 면에 대한 존경으로 가득 차 있다. 학대자기는 부모에 의해 공격받거나 버림받거나 비난받는 동안 발달시키게 되는 자기에 대한 감각이다.

    학대자기가 좌절시키는(frustrating) 대상과 연결되어 있는 자기감이라면, 희망자기는 흥분시키는(exciting) 대상과 연결되어 있는 자기감이다. 부모로부터 자신을 사랑해주고 만족시켜주겠다는 약속이나 암시를 받을 때, 아동은 비현실적인 희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나무라고 때리던 부모가 혹은 배우자가 갑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기꺼이 욕구를 충족시켜 줄 대상으로 변해버린다.

    신체적인 공격을 받을 때 피학대자인 배우자에게는 학대자기가 우세하지만, 상담가가 가학적인 배우자를 현실적으로 평가하고, 마지막으로 결행해야 할 현실 대처방법은 그 배우자를 떠나는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면, 급작스러운 유기공황(abandonment panic)이 엄습하면서, 학대받는 배우자의 자기상태는 희망자기로 돌변하게 된다. 그는 이제 희망자기의 지배 하에서, 자신을 학대한 배우자의 나쁜 모습들은 기억해내지도 못하게 되고, 학대하는 배우자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5.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매 맞는 여성들과의 상담경험이 많은 상담가라면 피학대 여성의 내부 역동을 파악하고 그것에 관해 작업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할 것이다. 물론 상담가가 피학대자의 복잡한 심리구조와 역동에 대해 알고 있다 할지라도 상담 장면에서 어떤 전략을 가지고 개입하는 것은 기법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내담자의 심리역동과 그들의 분열된 자아구조를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이들을 상담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일 것인가를 짐작해볼 수 있다.


    5.1 우선적 과제: 긍정적 함입


    반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그리고 그 배우자를 떠날 수 없는 아내에게는 그들만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 모두 건강하게 느끼고, 공감하고, 관계 맺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긍정적인 좋은-어머니-함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유아기의 충분한 좋은-어머니-함입이 선행되고 나면 유아는 어머니로부터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독립적으로 보이는 학대하는 배우자 그리고 그 배우자를 떠날 수 없는 피학대 배우자 모두 그들의 내면이 미숙한 영아기의 의존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신체적으로 학대받는 배우자를 가해자로부터 격리시켜둔다 할지라도, 그들 내면의 의존 욕구 때문에 그들은 또 다시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담에 의뢰되어 온 피학대여성에게는 그의 자아구조를 지지해 줄 긍정적인 함입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이 긍정적인 함입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내담자들이 상담가의 “좋음”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미성숙한 부모의 무책임함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었으므로, 도움을 주려고 하는 상담가를 신뢰하고 그 도움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들이 상담가에게 대하는 심리적 태도에는 결코 신뢰할 수 없었던 그들 부모에 대한 태도가 투사되고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음’ 혹은 ‘신뢰의 부재’는 상담가가 당연히 예상해야 할 난관일 수 있다.

    ‘신뢰의 부재’와 함께 상담 진행을 어렵게 하는 것은 내담자들의 비이성적인 사고, 혼란되고 일관적이지 못한 정서적 상태, 과도한 분열․투사․합리화․부정(denial)등의 원시적 방어들이다. 내담자의 문제 상황이나 주변 인물들에 대한 탐구에 들어가면, 내담자가 활용하는 도덕방어, 분열방어, 나쁜 대상에 대한 강한 집착, 회피, 비난에 대한 과민성 등으로 상담은 더욱 어렵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좋은-어머니-함입의 부재 때문에 확립된 그들의 기형적인 자아구조 때문이다.


    5.2 흥분시키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 ‘좋은-대상’으로서 양육하기, 그리고 분화될 수 있도록 촉진시키기


    내담자의 분열방어, 즉 학대자기와 희망자기가 번갈아가며 의식수준으로 올라오게 되어, 어느 한 쪽의 부분자기가 의식수준에 있을 때, 다른 부분자기는 완전히 망각된 채 무의식으로 쫓겨나서, 내담자가 사고과정이나 정서적 과정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없도록하는 분열방어의 사용을 줄여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담가가 좋은-대상의 역할을 해 주어야한다. 상담가는 내담자의 보조자아(auxiliary ego)가 되어주면서 당면한 문제들을 함께 풀어가고, 그 문제해결 방식을 다시 내담자에게 돌려준다. 흥분시키지 않으면서도 만족을 주는 그런 대상으로 상담가를 함입하면, 내담자는 자신도 흥분시키지 않으면서 거절하지도 않는 행동들을 일상생활에서 실행해볼 수 있다. 상담이 너무 빨리 종료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내담자를 도우려는 상담가의 노력은 내담자에게 자신이 관심받고,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주게 된다.

    충분한 함입이 축적되면, 피학대 여성을 학대하는 남편으로부터 신체적․심리적으로 분화시키는 일이 훨씬 용이해진다. 그러나 이렇게 분화를 촉진시키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내담자의 저항을 만나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분화는 내담자에게 유기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상담가는 그동안의 상담을 통해 내담자의 내부세계에 축적되어 있는 긍정적인 상담가-함입에 의존해서 이 작업을 감당해나가야 한다. 내담자의 내부 세계가 긍정적인 함입의 축적으로 어느 정도 힘을 갖게 되기까지는 내담자를 너무 압박한다거나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상담가의 지지를 충분히 받고 내면화하여 내담자가 안정된 자기감을 형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는 가해자를 떠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긍정적 함입이 축적되었다 할지라도, 내담자가 지니고 있는 분열된 자아구조 때문에, 상담과정 중에 상담가가 하는 행동이나 말은 내담자의 부분자기들, 즉 학대자기나 희망자기 중 하나를 강화시키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므로 신중하지 못한 상담가의 해석(interpretation)이나 명료화(clarification) 혹은 직면(confrontation) 등은 내담자의 불안정한 두 부분 자기간의 내부 균형을 깨뜨리고, 분열방어를 사용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피학대 여성들은 그들의 학대자기가 우세할 때 상담가를 찾아온다. 희망자기가 우세할 때에는 그들이 경험한 고통스런 기억들이 망각되어 상담 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담가는 내담자의 학대자기와 우선 동맹관계를 맺게 된다. 치료초기에는 내담자의 학대자기하고만 관계하면서 대상의 “나쁨”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 내담자의 삶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그런데 상담가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담자의 학대자기와 동맹하여 탐구한 “현실”은 내담자의 희망자기가 나타날 때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상담가는 어떤 현실도 믿을 수 없는데, 내담자의 두 부분자기가 대상 혹은 가해자에 대하여 갖는 비현실적인 시각 때문에 그러하다.

    학대자기와 동맹한 상담가는 내담자의 도덕방어 사용에 관해 직면(confrontation)해야 한다. 그러나 도덕방어에 직면하고 이를 처리하는 것은 분열방어를 처리하는 것 보다는 훨씬 덜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전념해야 할 과제는 피학대 내담자의 분열방어 사용을 줄여 학대배우자와 함께 사는 가혹한 현실에서 내담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상담가는 내담자가 상대 배우자에 대해 가지는 두 개의 분리된 상(像)을 하나의 전체적이고 통합된 안정적인 이미지로 통합시켜 나가야 한다. 이는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부분자기(희망자기와 학대자기)를 하나의 단일한 자기감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내담자가 분열 방어의 활용을 줄여나가게 되고, 자기와 대상과 외부 현실에 대한 연속성(continuity)과 전체성을 얻게 되려면, 상담가에 대한 긍정적인 함입이 많이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긍정적 함입은 손상된 자아를 가진 피학대 내담자들을 치료하는 열쇠이다. 분화도 통합도 지지적인 기억들이 많이 함입되기 전까지는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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