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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 도종환──•▶자아 채우기/마음의 양식 2011. 3. 17. 09:33
빈방 - 도종환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먼 산이 어둠을 천천히 빨아 들이는 것이 보일때
저녁 하늘이
어둠의 빛깔을 몸 가득 머금는 것이 보일때,
늘 가던 길에서 내려 샛길로 들고 싶다..
어디 종일 저 혼자 있던 빈 방이
나를 좀 들어오도록 허락 해 주면 좋겠다...
적막함이 낯설음을 말없이 받아주는 방
적막의 서늘한 무릎을 베고
잠시 누워있게 해 주면 좋겠다..
그동안 살면서
너무 많은 말을 하였으므로
말 없이 입을 닫고 있어도 불편해 하지 않고
먼저 지쳐 쓰러진 적이 있던 그가
오늘 지친 모습으로 들어온 하루치의 목숨을 위해
물 끓이는 소리를 들려주면 좋겠다..
처음엔 모두들 이렇게 어색한 얼굴로 쭈뼛거리기도 하다가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므로
문 밖으로 천천히 내려오던 어둠이
멋 쩍어하는 우리의 얼굴을 잠깐씩 가려주기도 하고
우리가 늘 타향을 전전하며 살고 있으므로
고향을 너무 멀리 떠나왔으므로
고향이 어딘지 묻는 것만으로도 말 문이 트이고
비슷한 어린시절의 이야기 하나
추억처럼 꺼내 놓아도
서로를 즐겁게 긍정하고
내 몸을 꽁꽁 묶으며 나를 긴장시키는게 일이던 끈들을 느슨하게 풀고
비슷한 사투리만으로도 익숙한 입 맛을 만나는 저녁시간
몇잔의 편안함이 술 향기로 번져오는 순간순간을 나누어 마시며
웃음이 번져가는 사람하나...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어둠속에서 만나는 객창감이 좋고
낯선 시간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른 팔로 베게를 하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 잠이들면
잠시 사라수나무 그림자 몸에와 일렁이고
내 겉옷을 들어 잠든 나를 덮어주는
이름 모르는 사람 하나...
곁에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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