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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지나간 예천 금당실 마을에 남겨진 상념──•▶발길 따라서/경북,대구 2012. 12. 15. 20:04
금당실 마을을 찾은 것은 행운이었다.
눈이 남긴 흔적들...눈이 올라가 그레이빛이 된 낮은 하늘,초가지붕 굴떡이 피워내는 연기, 그리움에 야윈 나무들..
카메라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사각프레임을 채우고 있다.
아름다움을 선사해준 눈이, 겨울이 고맙기만 하다.
취한 마음이 상념하나 금당실 마을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선다.
금당실은 마을내 고인돌 무덤이 산재하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기록상으로는 600여년전 15세기 초 감천 문씨(문헌)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의 손자 문부경의 사위 박종린과 변응녕이 처향인 금당실에 터전을 잡으면서 그 후손들이 번성하여 큰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할 수 있는 땅! 흔히 이런 곳을 우리는 승지라고 일컫는다.
즉 이런 경치가 좋거나 지형이 뛰어난 곳, 10군데가 있다고 하니 그 중 한 곳이 금당실이라고 한다.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던 이곳!
'금당실은 우리나라 십승지의 하나로 병화가 들지 못한다'고 하여 임진왜란 때 온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정감록(鄭鑑錄)에 남사고(南師古:1509~1571)가 꼽은 십승지지 가운데 한 곳으로서 '금당과 맛질을 합하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어 아쉽다'고 하였다.마을 앞 금곡천에 사금이 생산되었다고 하여 '금당실'은 금당곡 혹은 금곡이라고 한다. 또한 감천 문씨가 이곳을 개척했고 사위인 박종인과 변응영이 정착하여 지형을 피니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형국으로 북쪽의 매봉, 서쪽의 국사봉, 동쪽의 옥녀봉, 남쪽의 백마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지형으로 매봉이 조산(組山)이 되고 그 뒤로 길게 뻗은 소백산 줄기가 내룡(來龍)이 되어 연못을 상징해서 금당이라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군지에 따르면 이곳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지나가면서 말하기를 '달구리재(학명현)'가 앞에 있고 '개우리재(견곡현)'가 오른쪽에 있으니 중국의 양양 금곡과 지형이 같다고 하여 '금곡'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금당실 마을은 조선시대 고가옥과 미로로 연결되어 있는 돌담길이 양반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전통마을로서 역사, 문화, 전통이 강한 곳이다. 함양 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 함양박씨 입향조 박종린을 숭모하여 재향 올리는 추원재, 원주 변씨 변응녕을 기리는 사괴당 고택,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고택터, 조선 숙종 때 도승지 김빈을 추모하는 반송재 고택 등 이외에도 개량된 고택들이 자리하고 있어 전통생활양식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연못에 떠있는 연꽃을 상징하는 오미봉 공원과 마을의 서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막아주고 마을을 보호해주는 2km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금당실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과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금당실 사람들은 예부터 소나무를 베는 사람을 우물에 빠뜨릴 정도로 소나무를 아끼고 소중하게 보호하여 왔다.
최근에는 영화 영어완전정복(2003), 나의 결혼원정기(2005), 그해 여름(2006), KBS 드라마 황진이(2006) 등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서도 명성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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