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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훈아 사건과 ‘지랄’ (집단 히스테리 구조)
    ──•▶심리 자료방/상담, 심리, 다양한 연구결과 2008. 2. 17. 08:21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고 하는 <희극론>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된다고 한다.

    “어리석은 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비웃게 하라….” 그럴 법하다.

    그의 <비극론>이 사람들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인물들의 파멸을 보며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로 그들 마음속의 온갖 불순한 생각을 정화(catharsis)할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그의 <희극론>은 아마도 자신보다 못난 인간들의 찌질함을 보면서 자신들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마치

    다른 이의 어리석음인 양 맘껏 비웃으며 풀어내는 것이 요체가 될 것이다.

     

    군중의 누런 눈동자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한 사람의 신상에 대해 항간에 떠돌던 엽기적인 괴담들을 아무 사건 실체도 없이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이 총궐기해 전국에 유포했던 나훈아씨 사건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실로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유감없이 내보이면서 한 사람을 파멸의 지경으로 몰고 갔으니까 ‘희극’과 ‘비극’의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사건이 종결된 지금 껄껄 웃는 관객도 꺼이꺼이 우는 관객도 별로 없는 것 같으니 ‘희극’도 ‘비극’도 못 되는 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허탈한 소동이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정신병의 한 증후임은 분명한 것 같다. 정신병리학적 접근에는 병의 전력을 살펴보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얼마 전에는 신정아씨 ‘알몸 사진’ 사건이 있었다. 그전에는 정지영씨의 <마시멜로 이야기> 대필 번역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더 멀리 가면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사건이 있었다. 이 세 가지 사건 모두에는 동일한 집단적 히스테리의 흔적이 묻어 있다. 신정아씨가 학위를 위조했건 청와대 누군가와 ‘부적절한 관계’였건 그녀의 알몸 사진이 중앙 일간지에 게재되어 전국에 나부낄 이유는 없으며, 심지어 그 사진은 ‘합성된 것’이라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마시멜로를 지금 먹기보다 나중에 먹기 위해 아껴두라’는 범상한 내용의 책을 100만 명의 국민들이 시퍼런 배춧잎 바쳐가며 사서 읽는 대사건은 명문대 출신의 미모의 아나운서가 번역자로 나서는 바람에 가능했다. 책의 성공에 고무된 그녀가 스스로 유포한 ‘책이 재미있어서 하룻밤에 100쪽(!)을 번역한 적도 있다’는 괴담에는 아무도 의구심을 표하지 않았다. 사실이 밝혀진 뒤 ‘정신적 충격’을 입은 일군의 독자들은 그 보상을 요구하며 법정 소송을 벌이기도 한다. 길에서 어묵 파는 아주머니까지 ‘3번 줄기세포의 수립 여부’라는 초절정의 생명공학 용어를 사용하며 뜨거운 논쟁을 벌이던 2005년 겨울을 기억하시는지.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고 안간힘을 쓰던 극소수의 매체와 언론인들에게 거대 매체들과 광고주들과 다수의 군중이 가하던 그 험악한 협박과 공갈을 기억하시는지. ‘우리는 진실이 아니라 황우석의 꿈을 원한다’고 외치던 군중의 누런 눈동자를 기억하시는지.

    집단적 히스테리의 구조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 지배적 정서는 불안감이다. 내년 아니 내일의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유연성 넘치는’ 시장 사회 한국의 우리 마음속은 안정된 민주주의 사회 아테네 사람들은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온갖 불만과 불순한 감정’으로 꽉 차 있다.

    매체는 이러한 집단적 심리의 어두운 밑바닥을 짚어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분출시킬 적당한 사건과 소재를 꺼내든다.

    ‘정화’되지 못한 채 우리 마음속에 납덩이처럼 가라앉았던 그것은 온갖 뒤꼬인 관심과 허망한 환상과 기대로 마그마처럼 터져나온다.

    그래서 논문 조작자가 노벨상 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하고, ‘알몸 사진’이 안방으로 배달되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의 ‘신체 특정 부위’가 부산 어느 병원의 수술대에 오르기도 한다.

    우리의 불안과 불만, 그것을 투우장의 황소처럼 능숙하게 끌고 다니는 매체, 항상 허탈한 결말.

    이것이 우리의 집단적 히스테리의 구조인 듯하다.

     

    히스테리는 비극도 희극도 아니다.

    히스테리란 원래 여성의 자궁(hysteria)이 요동치는 증상을 뜻하는 말로서,

    ‘땅기운이 어지러워져 몸이 뒤틀리는’(地亂) 증상을 뜻하는 우리말 ‘지랄’과 꼭 닮아 있다.

                                                                                            ▣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잠깐 상식:

    집단 히스테리란?

    히스테리 증상이 집단내에 만연하는 현상.

    한 사람이 증상을 경험하면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 역시 감은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스트레스나 도덕적 갈등이 야기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병자를 동일시하고 그 행동을

    따라한다.

    학업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학교 히스테리, 죽음의 불안과 전쟁공포가 질병처럼 번진 전장(戰場) 히스테리 등이 대표적인 예.

    억압적 성격이 강한 집단에서 발생하는 것 외에도 한 집단에 드럼소리를 들려 주거나 주문(呪文) 같은 것을 외거나 몸짓·춤을 출 때 일어나는 현상도 있다.

    미개종교·신흥종교 등의 의식, 또는 팝음악 연주회의 참가자에게서 볼 수 있는 실신·발작이 이에 속한다.

    심하면 패닉(panic) 상태에 빠진다.

     

    집단적 히스테리는 다음의 3가지 요인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로이스 박사는 말한다.

    1. 집단적 퇴행

    2. 지표가 되는 사례에 대한 동일시

    3. 잠재된 갈등의 무의식적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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