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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진단적 안경'(diagnostic glasses)을 낀다."
엡팅이라는 심리학자의 말입니다. 사람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상대의 말 한마디, 써 있는 단어 하나에 좌우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말입니다.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미시건대 해롤드 켈리 교수가 한 실험입니다.
경제학 수업을 듣는 MIT 공대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수업시작 직전에 조교가 들어와 담당교수가 일이 생겨서 대신 대체강사가 수업을 진행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강사에 대한 소개서를 주며 수업 후에 강사평가 양식을 작성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받은 강사 소개서는 두 종류였습니다. 물론 학생들은 몰랐지요.
1. "OOO씨는 MIT 경제사회과학과의 대학원생이다. 그는 다른 대학에서 3학기 동안 심리학을 가르쳐본 적이 있으나 경제학을 가르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6세로 군대를 제대했으며 기혼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마음이 따뜻하고 성실하며 비판적이고 실무에 밝으면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2. "OOO씨는 MIT 경제사회과학과의 대학원생이다. 그는 다른 대학에서 3학기 동안 심리학을 가르쳐본 적이 있으나 경제학을 가르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6세로 군대를 제대했으며 기혼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마음이 차갑고 성실하며 비판적이고 실무에 밝으면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두 강사 소개서의 차이는 단 하나의 단어였습니다. '따뜻하고'와 '차갑고'만 달랐지요. 이어 강사가 수업을 진행했고 수업이 끝난뒤 강사평가를 위한 동일한 설문지를 받았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마치 학생들이 전혀 다른 2명의 강사를 평가한 듯했으니까요. 강사를 '따뜻한' 사람으로 소개받은 그룹의 학생들은 대부분 그를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이 학생들은 '친절하다, 타인을 배려한다, 격의 없다, 사교적이다, 인기 있다, 유머감각이 있다, 인간적이다' 등의 단어를 써서 강사를 묘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차가운' 사람으로 소개받은 그룹은 똑같은 수업을 들었지만 대부분 그 강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강사에 대해 '자기중심적이다, 딱딱하다, 붙임성이 없다, 화를 잘 낸다, 유머감각이 없다' 등의 단어로 그를 묘사했습니다.
사전에 강사소개서라는 문서에서 본 단어 하나의 차이가 학생들의 평가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겁니다. 학생들은 소개서를 읽자마자 강사에 대한 판단을 굳혔고, 그 이후에는 자신이 쓴 '안경'에 맞지 않는 '사실'들은 아예 보지도 못한 걸겁니다. 만약 눈에 안들어온 것이 '중요한 사실들'이라면, 판단에도 결정적인 생기겠지요.
단어 하나에도 생각이 흔들릴 수 있는 우리의 심리. 이런 취약성을 인식하고,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 이를 항상 고려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