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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송 옹기
    ──•▶발길 따라서/경북,대구 2010. 8. 31. 23:27

    옹기에 대학 특별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옹기만 보면...

    어머니가...고향이..

    그리고 눈물나게 서러움이 묻어나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지인의 블에서 만난옹기...

    마음이... 마음이..

    소곤거리며

    그 곳으로 등을 민다.

     

     

     

     

     

     옹기의 특징 : 자연적 소박함이 묻어있는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총칭하는 말로써

    '瓮' 또는 '饔'이라고 쓰며, 외국어 표기는 'on-ggi'로 하고 있다.


    질그릇은 진흙으로만 만들어 구워 잿물을 입히지 않은 그릇이며,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다시 구운 윤이 나고 단단한 그릇이다.
    질그릇은 유약을 입히지 않아 기공이 메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공기의 유통이 좋아 곡식을 담아 두어도 벌레가 생기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질그릇은 저장 용기로 발달되었다.


    반면, 오지그릇은 질그릇과는 달리 유약을 입혀 다시 구워내어 내화력이 강하고 흡수성이 적기 때문에

    취사용구, 운반용구, 수납용구로 이용되었다.
    옹기는 다른 용기와 비교해서 내용물이 쉽게 변색되지 않고 인체에 무해하며,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커다란 우수성을 갖고있다.


    종류 : 실용성과 견고성을 제일로 내세우는 옹기는 구워 만드는 방법에 따라

    질독, 푸레독, 오지그릇, 반옹기, 옹기로 구분할 수 있다.

     

    기의 제작과정은 우선 제일 중요한 질(질은 옹기를 만드는 흙을 가르키죠)만들기.

    흙을 질밭으로부터 채굴하여 모아 놓고 물을 뿌려 흙이 물에 붇도록 하룻밤을 놓아 두는데 이것을 재운생질이라고 한단다.



    재운질을 생질꾼이 한곳에 모으면서 매질을 하고 이 과정을 거쳐 고작 대미를 마련하는 공정을 하는 사람을 생질꾼이라 한다.

     이것은 재래식 방법이고 1950년대 이후에는 생질꾼에의해 채굴된 흙을 넓은 마당에 펼쳐 놓고 건조시킨것을

    수비질하는 수비꾼이 이것을 물탕인 수비통속에 적당히 넣어 물에 잘 풀리도록하여 흙탕을 만든뒤 흙탕물을 수비탕에 옮겼다가

    다시 수비한 것을 한곳에 펼쳐 넣고 수분을 건조시킨다.

     

    도예에서 태토를 만드는 방법과 비슷.

    수비질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재래식 질대림질에서 얻어진 흙에서는

    불순물인 돌, 왕모래, 나뭇조각, 짚풀등을 충분히 가려내지 못하므로

    완벽한 옹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수비질을 하는 것.

    그러나 요사이 옹기점에서는 재래양식으로 하는곳보다 좀 편한 롤러 밀(Roller Mill)이라는 기계로 아주 질 좋은 흙을 쉽게 만들고,

    수비질은 옹기를 만드는 기본 흙이지만 점력이 약해 항아리로 직접 만드는데는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생질꾼에 의해 만들어진 고작대미를 우선 낫과 같은 흙깨끼 칼로써 두께 0.2내지 0.3Cm정도 깎아내며

    그전에 제거 못한 불순물을 골라 낸다.

    이것은 불순물 제거라는 이유도 있지만 건조된 흙과 무른 흙을 좀더 치밀하게 배합 혼합시키면서

    흙속에 고여 있는 공기를 빼내는 동시에 질을 부드럽게 만드는 작업이다.

    흙속에 공기가 있으면 나중에 가마안의 높은온도에서 공기가 팽창해서 균열이가기 때문이단다.

    깨끼질을 하면서 깨낀 질을 40Cm정도로 둥글게 뭉쳐 놓은질을 가리켜 질덩이라 하는데,

     질덩이를 손질하기 위해서 우선 움(여기서 움이란 항아리를 만드는 공간이라 할수 있지요)바닥에 백토가루를 뿌려 놓고

    그위에 질덩이를 서너줄로 늘어놓지만 근년에 들어서는 백토가루 대신에 마포나 광목등의 길다란 포장을 깔아 놓은 뒤

    그위에다 질덩어리를 쭉 늘어놓고 매통이나 감투매로 고운다음에 꽃매(머리가 약간 긴 나무망치 같은거죠)를 가지고 골고루 두들긴다.

     꽃매질이 끝나면 꽃매를 다시 옆으로 뉘어 또다시 고루치는 옆매질 작업을 한다고 한다. 

    옆매질 작업이 끝난질을 가리켜 친흙, 익은질, 친질등으로 부르는데,

    익은질이란 흙을 반죽 하였다는 뜻이다.

    이 익은질을 목가래로 운반하기 좋을 정도로 다시 갈아 이것을 한곳에 쌓아 올려 놓고,

    이렇게 쌓아올린 고작대미를 만드는 것을 "대낸긴다"라고 하며 이것은 "다시 넘긴다 "란 뜻이다.


    대낸긴 고작대미가 끝나면 또다시 깨끼를 가지고 고작대미를 두번째 깎는데 이를 대깨끼라 하고

    이와 같은 대깨끼 작업을 하면서 다시 질덩이를 만들고 마포위에 늘어놓은뒤 매통이나 감투매로써 질을 대리고난 뒤 다시 꽃매질을 한다.

     두번째로 이긴질을 뒤집어 놓고 곤매질과 옆매질을 계속하는데,

     옆매질로써 질을 대린 뒤에 목가래로 방형으로 잘라 놓은것을 가리켜 판장질 이라고 하고,

    대림질한 판장질을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옮겨 쌓아 놓은뒤 표면이 건조되지 않도록 물 헝겊 덮개로 덮어 놓는다.

    이렇게 복잡하게 흙을 만드는것은 불순물 제거와 반죽,공기를 최대한 흙속에서 빼내기 위한 이유라고 한다.

    항아리 만드는데 물레작업은 필수작업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도자에서의 물레작업과는 틀린점이 아주많다고 한다.

    도자에서는 흙을 물레에서 돌려 하나의 기물을 만드는 것이고 항아리를 만들수 있다고 한다.

     

    옹기 항아리를 만드는 물레작업에 앞서 도자에서의 기본적 물레작업은,

     물레는 녹로라고도 하고, 한문으로는 도차(陶車)라고도 하고 영어로 potter's whell이라고 한다.

    물레는 도자의 성형중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의 하나로 원형이나 원통형의 것을 빠르고 쉽게 제작하기 위해 태토를 이용하여

    성형할 때 사용한다.

     

    종류에는 손물레, 발물레, 기계물 레 등이 있다.

    손물레는 간단한 기물이나 원형이나 대칭이 아닌 기물을 만들때 많이 사용하고

    발물레는 기계물레가 나오기전에 사용했던것으로 옛날에는 발물레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 이후 기계의 발달로 전기물레가 나와 지금은 발물레를 고집하시는 분들 이외에는 거의 전기물레를 사용하고 있다.

    물레의 원리는 회전 운동에의한 흙이 대칭형의 둥근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흙은 그 가소성 때문에 쪼게지지 않고 둥근 형태로 이루어것인데, 흙은 늘어나서 아주 앏아진다.

    위아래 비율이 않맞으면 무너지기도 하지만,

    작으마한 흙덩어리가 그 크기의 몇배의 크기의 항아리나 발등으로 만들어지는것이 상당이 흥미있는 사실이다.

     

     

     

     

     

    옷가지와 온몸에 묻은 진흙의 흔적들로 보아 옹기장이 인듯 했다.

    옹기장이가 깨를...깨가 더 고소하려나..ㅎㅎ

     

     

    깨어진 옹기에서도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물레이다.

    장인의 손이 이곳에서는 더 깊은 숨을 쉬겠지.

     

    물레가 돌아갈때 사용되는 것인 듯 했다.

     

    옹기는?

    근대·현대의 개념으로 무유(無釉) 또는 시유(施釉)를 한 도기질(陶器質) 그릇의 총칭

     

    원래는 이와 같은 질적인 구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릇의 종류를 가리키는 것으로 저장용 큰 항아리를 말한다.

    옹(甕)이 큰 항아리를 가리키는 최초의 자료는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대옹(大甕)에 음각된 '십구입옹'(十口入瓮)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도자기를 '陶' 또는 '瓦'로 표현했으며 '瓮'은 그릇의 종류를 의미했다.

    이러한 표현은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와서 그 개념이 변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도자기 제작소를 도기소(陶器所)와 자기소(磁器所)로 구분한 반면,

    〈경국대전〉에는 제작자를 와장(瓦匠)과 사기장(沙器匠)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 옹장을 황옹장(黃瓮匠)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瓮'의 개념이 사기(磁器質)가 아닌 옹기(陶器質)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근대에 들어오면 도자기의 생산체계가 자기와 옹기로 양분되면서

    자기를 제외한 토기·오지·질그릇·옹기 등을 통틀어 옹기라고 한다.

    옹기는 제작방법에서 자기와 큰 차이를 보이는데,

    성형기법은 초기 철기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타날법(打捏法)이며

    유약을 씌우는 경우에는 잿물[灰釉]을 사용한다.

     

    가마는 전통적인 통가마[登窯]이며 1번만 번조하여 완성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자기제작소는 외래의 기술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기술이 사라졌지만

    옹기의 경우는 전통이 잘 보존되어왔다.

    그러나 근래에 등장한 플라스틱·스테인리스 등과 같은 대체재료에 의해 그 수요가 감소되고 있다.

     

    옹기마다 새겨진 청송옹기 낙관(?)

     

    옹기장이인 듯 했다.

    찰흙의 보관상태를 보여주셨다.

     

    비닐속에 숨겨진 찰흙더미.

     조상들의 질퍽한 삶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청송가마는 체험 학습장을 갖추고 있었는데..

    구경오신 분이 즉석에서 만든 상상속의 동물이다.

     

    어라~~~

    슬금 슬금 발을 띈다...믿거나 말거나..ㅎㅎ

     

     

    옹기 가마~~

    옹기가마는 옹기그릇을 굽는 시설로

     기다란 굴같이 생겼으며 아궁이와 굴뚝이 있다.

     

    청송옹기에는....

    긴 가마와 작은 가마 두개의 가마가 있었는데...

    이건 작은 가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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