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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웅비산악회와 함께 떠난 석모도 보문사..(2011.6.19)
    ──•▶발길 따라서/강원도 2011. 6. 20. 06:15

    웅비산악회와 함께떠난 석모도 보문사..

     

     

    석모도 보문사는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낙가산에 있는 사찰이다.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에 있다.
    양양낙산사와 금산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으로,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 곳에 와서 절을 창건하였는데,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산의 이름을 낙가산이라고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극락보전
    현재 정면 5칸 측면 3칸의 커다란 규모로 보문사를 찾는 사람을 반기고있다.

    극락보전의 내부 넓이는 약 60평이며, 이곳에 관음보살상을 포함해 3,000불이 모셔져있다.

    극락보전 바로 아래에는 요사채가 있다.

    그래서 경내에서 이 곳을 바라볼 때는 지상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계단 아래 주차장 쪽에서 보면 2층 요사 건물 위 3층 되는 곳에 올려진 것으로 보인다.

    곧 2층 요사 옥상 위에 세워진 셈이다.

     

     

     

    삼성각

    삼성각(三聖閣)은 나한전 석실 뒤쪽 오른편에 있다. 1960년에 지어졌으며 최근 중수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 건물을 하고 있다.

    내부 넓이는 처음 지어질 당시는 4평이 조금 못되었으나 지금은 좀 더 확장되었다.

    위치는 경내보다 높게 축대를 이중으로 쌓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돌계단으로 오르내리도록 했다.

    계단 옆에는 최근 조성한 석등 2기가 양쪽으로 있다.

    안에는 불단은 놓여 있으나 불상 없이 가운데 칠성탱화를 중심으로 산신탱화 독성 탱화가 봉안되었고,

    양쪽 내벽(內壁)에도 나한도가 각각 걸려 있다. 불단에 모셔진 칠성탱화 등은 모두 1992년에 봉안된 것이다.

     

     

     

    보문사의 향나무, 느티나무

     

     석실과 범종각 사이에 있는 큰 바위틈에 인천광역시 지방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된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령(樹齡)이 약 600년이나 된 노목(老木)으로 크기는 높이 32m, 땅 위 1.2m 부위의 둘레가 2.8m이다.

    1.7m 높이에서 원줄기가 동서로 갈라져 둘레가 동쪽 것은 1.3m, 서쪽 것은 1.5m나 된다.

    이 향나무는 6·25 당시 죽은 것같 이 보였다가 3년 뒤 다시 소생하였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향나무 옆 천인대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두 그루가 나란히 자라고 있다.

    둘 다 수령은 약 290년이고 크기도 비슷해서 높이 16m, 둘레 4.8m 정도이다 현재 군(郡)지정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또 절 경내 아래 주차장에도 수령 약 600년 된 노목 한 그루가 있어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수종은 은행나무인데 높이 31m, 둘레 4.8m 나 된다. 역시 군 지정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이 밖에도 경내에는 적송과 참나무, 그 외 여러 잡목들이 우거져 있다.


     

     

    보문사 석실

    석실 안에 봉안된 23불의 나한상은 눈썹바위의 마애관음보살좌상과 더불어 보문사의 대표적 성보문화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문사가 관음신앙의 성지인 동시에 나한신앙의 대표적 도량이 된 것은 바로 이 석실에 있는 나한상 때문으로 보아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 석실 및 안에 봉안된 나한상이 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높다.

    또한 이 석실은 우리 나라에 흔치않은 석굴사원이기도 하다.

    석굴사원의 예는 경주 석굴암, 경북 군위의 삼존석굴, 강원도 속초의 개조암(開祖庵) 등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몇 되지 않는 귀중한 예이다.

    이 석실의 역사는 곧 보문사 창건 역사와 거의 일치한다.

     

    전설에 따르면 창건 후 14년 뒤인 649년 신라 선덕왕 때

    어부들이 고기잡이 나가다 그물에 걸려 올려진 석불상들을 이곳 동굴에 안치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곧 이때부터 석실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갈증을 식혀가는 약수...

    부처곁에서 흐르는 약수는 정신을 정제하는 효과를 있겠지.

     

     

     

    범종각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1975년에 지어졌으며 안에는 그 당시 국내 최대의 범종이 봉안되어 있다.

    이 범종은 1975년 당시 주지인 정수(正秀)스님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는데.

    높이 215cm, 밑지름 140cm, 무게 5t이나 된다. 조성 당시 국내 최대의 범종으로서 나라 안팎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본 형태는 국보 제36호인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동종과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을 조화시켜 도안한 것이다.

    이 범종은 1975년에 고 육영수(陸英修) 여사가 화주하여 모셔진 것이라고 한다.

    한편 `범종각'이라는 현판 글씨는 강화가 고향인 서예가 박세림(朴世霖, 1924∼1975)의 작품이다.

     

     

     

     

     

    깨어진 옥등잔 전설

    옛날에, 보문사의 어린 사미승이 부처님께 등공양을 하기 위해 법당에 들어갔다.

    나한전에는 보문사에 전해내려오는 귀중한 보물인 옥등잔이 있었는데, 사미승은 옥등잔에 기름을 부으러 가는 것이다.
    사미승은 옥등잔을 내리고, 등잔에 기름을 붓다가 실수로 등잔을 떨어뜨리게 된다.

    떨어진 옥등잔은 두조각이 나게 되고, 사미승은 혼비백산하여 법당을 빠져나와 구석에 주저앉아 훌쩍이게 된다.


    마침 지나던 노스님이 사미승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일인지 물어보자,

    사미승은 옥등잔을 깨게 된 일을말하게 된다.
    사미승과 노스님은 깨진 옥등잔이 있는 나한전으로 들어갔는데,

    두동강난 옥등잔은 멀쩡히 불빛만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상히 여긴 노스님은 옥등잔을 자세히 살펴 보았지만, 깨진 흔적조차 없이 멀쩡하였다.

    이에 노스님은 "이것은 분명 나한의 신통력 때문이로다" 하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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