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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왕산 폭포에서
    ──•▶일상 탈출기/산으로 가자 2013. 5. 1. 00:00

    주왕산의 제1·2·3폭포는 주왕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여름의 초입에 나선 주왕산 산행

    주왕산 폭포의 물줄기는 이미 여름의 기운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산 이름은 일반적으로 그 산의 특징이나 의미를 기준으로 붙이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주왕산은 ‘주왕’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

    주왕사적연구가 김규봉씨의 저서 ‘주왕산’에 따르면 주왕산은 신라시대에는 바위가 병풍처럼 서 있다 하여 ‘석병산’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대동여지도(1861년), 청송군읍지(1899년)에는 ‘주방산’ 또는 ‘대둔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왕산은 한때 청송심씨 문중 소유였다. 심씨 문중은 시조묘소 수호산의 명칭이 ‘주왕’이라는 중국 반란자의 이름에서 왔다는데 반발해 개명운동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400여년 동안 지속된 개명운동은 별 성과를 얻지 못해 민간에서는 주왕산이란 이름이 그대로 사용됐다. 그러다 1937년 발간된 청송군지에서 공식적으로 ‘주왕산’이라 기록한 후 모든 문헌이 이를 따랐다.

    주왕산의 제1·2·3폭포는 주왕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명소.

    일제가 이곳 문화자원 및 기록을 침탈하면서 예로부터 불려오던 이름이 자취를 감추고 지금까지 ‘제1·2·3폭포’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주방천 계곡의 학수대 건너에 있는 제1폭포를 ‘외용추’ ‘용추폭포’ ‘비로봉폭포’라 불렀다고 한다.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 선녀탕과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소가 폭포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제2폭포는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처마처럼 생긴 바위에서 떨어져 절구처럼 생긴 바위에 담겼다가 다시 낮은 바위를 타고 쏟아진다 해 ‘중용추’ ‘절구폭포’로 불렸다. 제3폭포는 ‘내용추’ ‘용연폭포’라 했다. 영덕군 강구 앞바다와 통하고 있으며 용이 살았다고 전한다.

     또 폭포가 깊어 명주실이 닿지 않았다는 달기폭포는 ‘낙연폭포’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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