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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부아르, 여성을 말하다(펌)
    ──•▶강사의 흔적/성인지, 젠더폭력 2019. 3. 18. 11:28

    보부아르, 여성을 말하다

    글│ 박홍순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저자

     

    보부아르, 여성을 말하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보부아르(Beauvoir)의 말은 유명하다. 그녀는 실천적으로도 남성과 동등한 관계를 실험했다. 철학자 사르트르와 2년간의 계약결혼에 들어갔는데, 주요 내용은 세 가지였다. 첫째, 서로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에 동의한다. 둘째, 서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숨기지 않는다. 셋째,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 특히 다른 사람과 사랑할 권리를 인정한 내용을 놓고 두 사람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근처의 아파트나 호텔에 각기 기거하면서 매일 만나 사랑하고 토론하고 작품을 구상했다. 같은 집에 살지 않으며,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으며, 동시에 상대에게 모든 자유를 보장하는 동지적 관계를 표방한 계약결혼을 50년이 넘도록 이어갔다. 계약결혼은 오늘날 프랑스 전체 가정의 10%를 차지한다.

     


      두 사람은 사회적 실천에도 적극적이었다. 보부아르는 세계2차 대전이 일어나자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 사르트르는 포로가 되어 수용소 생활을 하다 탈출에 성공했다. 1968년 68혁명 시기에는 혁명적 여성주의자 그룹의 구성원으로 본격적인 양성평등을 위한 활동에 나섰다. 대표 저작인 『제2의 성』은 출간 1주일 만에 2만부가 팔리며 각광을 받았고, 현대 여성해방운동의 경전이자 교과서로 평가받는다.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신체적 능력과 생식기 기능에 관련된 생리적 숙명을 가리킨다. 여성은 뼈나 근육의 힘이 약하니 남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라는 논리다. 남성은 생식기가 돌출되어 있어서 능동적이고, 생식기가 내장되어 있는 여성은 수동적이라고 본다. 신체 구조의 차이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를 현실의 우월과 열등으로 연결하여 구분하는 논리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신체적 힘이 강하기 때문에 우월하다는 논리에 집착한다면 국가나 기업의 일을 근육의 힘이 제일 센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간은 육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지 않는, 정신적·사회적 존재다. 특히 과학기술 및 기계의 발달로 더 이상 근육의 힘 차이가 일을 하는 데 그다지 결정적이지 않게 된 현대사회에서 생물학적 논리는 구차한 발상이다.

     


      여성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말의 두 의미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보부아르의 문제의식은 성(Sex)과 젠더(Gender)의 차이를 논의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성이 생물학적 개념이라면 젠더는 사회적 개념이다. 생물학적인 여자(Female)와 특정 문화에 따라 여성(Women)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회적으로 여성은 주위의 시선, 특히 남성의 시선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 흔히 여자아이가 예쁜 인형을 갖고 놀면 ‘역시 여자는 여자야’라며 여성다움은 본래 타고난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조차도 부모에 의해 훈련된 선택이다. 아직 장난감이 뭔지도 모를 때부터 여자아이에게는 치마와 분홍색 리본을 달아주고, 인형을 선물한다. 갓난아기는 아빠와 엄마의 말투나 행동을 보면서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고 규정된 사회적 편견과 습성을 배운다. 여성은 스스로의 눈이 아니라 남성의 눈에 의해 사고와 행위를 정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풍토가 아이에게 적용되면서 여성은 수동적·수세적 성향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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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어진 여성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보부아르에 의하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직시하고 자기 해방을 위해 정치·경제·문화·사회 전 영역에 걸친 총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다. 여성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규명하기 위해 반드시 ‘여성은 누구인가’에 답해야 한다. 다양한 사회적 관계 이전에 보편적인 의미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역사와 계급,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보편적 ‘여성’ 개념이 성립될 수 없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백인 여성과 흑인노예 여성을 하나의 ‘여성’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왕자와 거지, 주인과 노예의 차이가 모두 상쇄될 수 없듯이 ‘여성’을 보편적 의미가 아니라 역사적, 사회계층적 구조 내에서 보아야 한다는 반론은 충분히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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