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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성김씨 학봉종택에도 은행잎 가을이 들다
    ──•▶발길 따라서/경북,대구 2010. 10. 25. 16:26

    봉정사 산행후 돌아오는 길..

    저무는 해를 삼키듯  황금빛 은행잎이 의성김씨 학봉 고택으로

    발길을 머물게 한다.

    은행잎이 황금빛 그들아래 서게 한다.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자리한 학봉종택은 □자형의 사랑방, 안방, 문간방,

    사랑마루 등으로 구성된 정침과 운장각, 풍뢰헌 및 세 칸의 사당을 합해

    모두 90여 칸으로 이루어진 전통 고택이다.

     

     

     

     

     

     

     

     

     

     

     

     

     

     

     조선 선조 때의 명신이며 학자인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유물을 보관한 곳인 운장각은

    선생께서 남기신 서적·물품·친필기록 제초고 및 선조전래의 전적·문서와 후손들의 유품 등

    500여점의 보물을 영구히 보존코자 건립하였다.

    학봉종택은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으나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자주 된다며 학봉의 8세손 광찬(光燦)이

    1762년(영조 38) 이곳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현재 소계서당(邵溪書堂)이 있는 자리에 옮겨 살고

    종택이 있던 자리에는 소계서당을 지었다 한다.

    그러나 1964년 종택을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위치로 이건되었다.

    학봉은 류성룡(柳成龍)과 더불어 퇴계의 고제(高弟)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27세에 사마시, 1568년(선조 1) 중광문과 병과에 합격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577년(선조 10)에는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1590년(선조 23)에는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으나

    임란때에 왜적과의 전투를 독려하다가 병사하였다

     

     

     

     

     

     

    유림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는 보통 4대를 모신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부와 고조부다. 그런데 대가 내려가면

    고조부의 제사는 조매(사당에서 모시던 신위를 산으로 묻는 것)를 하게 된다.

     하지만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나라에서 사당을 하사하고

    그에 따른 토지나 재물 등을 하사하면, 그 제사를 아랫대에서 영구히 모시게

    되는데 이를 ‘불천위’라 한다.

     

     

    영원히 제사를 지내는 불천위를 모시는종가 (안동) 진성이씨 퇴계종가.

    안동김씨 보백당종가.광산 김씨 예안파 종가, 영천이씨 농암종가.

    전주류씨 .백졸암종가.용와종가.삼산종가.호고와종가.정재종가.

    하회 류씨 양진당과 충효당 종가, 재령 이씨 석계 종가, 등 48위

    안동 권씨 권벌 종가, 경주 최씨 사성공파 종가, 의성 김씨 김성일 종가 등이다.

     

    이들 중 의성 김씨 김성일 종가의 중시조인 학봉 김성일(1538~ 1593)은

    퇴계의 학풍을 이어받은 성리학자로 퇴계 문하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힌다.

    1569년, 퇴계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인재를 천거해 달라는

     임금의 부탁에 김성일을 추천했을 정도로

    퇴계 선생이 각별히 아끼던 제자였다.

     

     

    임진왜란 전에 정사 황윤길과 함께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왔으며,

    임진왜란 중인 1593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진주성에서

    군사를 지휘하던중 56세의 나이로 순직하게 된다. 

     

    이처럼 조선을 위해 평생을 바친 학봉의 불천위 제사는

    그의 기일인 4월 29일에 행해진다.

    기일 전날 후손들이 모여 사랑에 둘러앉아 집사분정

    (제사 의례를 행할 때의 업무분장)을 하며,

    밤 열시 즈음 설소과(設蔬果 _ 채소와 과실 등을 진설하는 일)를 시작으로

    제례의식이 시작된다.

     

     

    1차 진설이 끝나면, 본 제사에 앞서 승진이나 좋은 일을 맞이한 후손들을

    불천위 선조께 알리는 고유제가 시작된다.

    이는 후손들의 영광을 조상의 음덕으로 돌려 선조께 감사의 뜻을 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고유제가 끝나면 음복을 하고, 밤 12시가 지나 종손을 비롯한 모든 참사자들은

    두루마기나 도포, 유건 차림으로 전설되어 있는 정침에 도열한다.

     이러한 절차가 끝나면 다음으로 출주出主가 진행되는데,

    출주는 신주를 사당에서 모시고 나오는 절차이다.

    신주를 신위전으로 모실 때는 참신례 후 강신례를 행한다.

     

     

    참신례는 조상신과 참사자가 해후하는 의례이며,

    신이 제례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확인하는 의례이다.

     

     

    다음 차례인 강신례는 신을 강림하게 하는 절차이다.

     종손이 손을 씻고 제단으로 나아가 향을 세 번 피우고 술을 모사에게

    따라 준다. 이는 땅으로부터 혼백을 불러 합치시키는 의례이다.

    향은 향나무로 만든 천연향, 술은 청주를 사용한다.

    진찬進饌은 신이 강림한 후, 더운 음식을 올리는 2차 진설 절차다.

    이때 메(밥)와 갱(국), 면(국수), 편(떡), 도적, 탕 등을 올린다.

    이때 메를 서쪽에, 갱을 동쪽에 놓고, 도적은 고기를 쌓는 것으로

     메 앞의 서쪽에 놓으며, 편은 갱 앞의 동쪽에 놓는다.

    이러한 음식들 중 도적은 바다와 땅과 하늘에서 나는 제물로

    어적·육적·계적을 적틀의 맨 아래부터 쌓는데,

    특이한 것은 모두 날 것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는「예기」의 혈식군자血食君子, 즉 ‘군자는 날것을 먹는다’는

    설에 근거한다. 탕은 육탕·어탕·봉탕·소탕·잡탕 등 오탕을 올리는데,

    그릇 수는 보통 3, 5, 7의 홀수로 사용하며 신분에 따라 제왕은 칠탕,

    대부는 오탕, 서인은 삼탕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초헌례는 강림한 신에게 술을 권하고 언제 누가 누구에게 제사를 올리는지

    고하는 절차이다.

    종손이 손술을 올리고 참사자들이 모두 꿇어앉아 축문을 낭독한다.

     

     

    초헌례가 끝나면 아헌례와 종헌례가 이어지는데,

     아헌례는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순서로 아헌은 주부가 된다.

    이는 특히 ‘제사는 부부가 함께 한다(夫婦共祭)’는 의미에서 나온 예법이다.

     유식례는 신에게 음식을 드시도록 권하는 절차이다.

    이때 술잔에 첨작을 하게 되는데 첨작은 식사를 하면서 반주로 술을

    더 드시라는 의미이다.

     

     

    유식례가 끝나면 참사자들은 모두 잠시 밖으로 나간다.

    이를 합문례라고 하는데,

    신이 조용한 공간에서 편안히 식사할 수 있도록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는 의례이다.

    식사시간은 구식경이라 하여 밥을 아홉 숟갈 먹는 시간 정도로 한다.

    종손이 3번 기침을 한 후 닫혀졌던 가리개를 거두는 계문례 의식이 끝나면,

     

     

    식사를 마친 후 숭늉을 드리는 절차인 진다례를 행한다.

    앞선 절차가 모두 끝나면 신을 떠나보내는 사신례를 드리는데,

    수저를 거두고 뚜껑이 있는 음식을 모두 덮고 참사자 모두가 두 번 절하게 된다.

     

     

    절을 마치면 종손은 축문을 불태우고 신주를 출주 때와 반대의 순서로

    사당에 봉안하는데, 이로써 모든 예가 끝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정성들여 준비하고 드린 제례 절차를 마치면

    음복을 하고 제상을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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