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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졸(守拙)에서 입신(入神)까지 골프의 9단계
    ──•▶세상 돋보기/골프 이야기 2013. 4. 26. 08:40

     

     

     

    [마니아리포트 김기호]6세기경의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양(梁)나라의 무제(武帝)는 오늘날의 단에 해당하는 바둑에 대한 기품(棋品)을 만들었다. 그는 유학 불교 형이상학 등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기도 했다. 그가 만든 기품은 많은 종목에서 오늘날까지 널리 사용되는 치수의 개념이 된다. 초단인 수졸에서 마지막 9단을 입신의 경지라 했는데 동양에서는 9를 완전한 숫자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바둑 격언과 골프 격언은 상당부분 맥이 상통해 있어 놀란 적이 많다. 청록파 시인으로 유명한 조지훈님도 주도유단(酒道有段)이란 절묘한 통찰을 남겼다. 술을 마시면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酒歷)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래는 양무제 시대에 만들어진 수졸에서 입신까지의 경지를 골프로 바꿔봤다. 골프와 인생, 술주정은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 수졸(守拙) - 초단
    졸렬하게 나마 이제 겨우 제 한 몸은 지킬 수 있게 된 단계를 말한다. 강호에 나와 머리를 올린 후 셀 수 없는 타수를 기록하지만 골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새로운 친구를 얻는다. 좋은 기초는 50년을 보장하지만 무 기초는 5분에 한 번씩 스윙이 바뀐다는 것을 배우면 가장 좋다. 좋은 스승과 좋은 매너를 가르쳐 줄 동반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직 골퍼로 잉태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매너와 에티켓,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을 필사적으로 배워야 한다.

    ■ 약우(若愚) - 2단 .
    일견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나름의 생각과 지모(智謀)가 있는 단계. 100개 언저리를 치지만 먼저 생각하고 샷을 하지 못하고 치고 난 후 고민하는 하수의 틀을 벗지 못하고 있다. 골프를 통해 겸손과 인내를 배우는 기간이 된다. 상급의 이론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데 골프는 생각이 아닌 몸이 실행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판단하며 가장 확률이 높은 샷을 해야 한다. 성공적으로 잉태되어 알 속에 있는 상태로 깨어나 각인(刻印)의 과정을 거칠 날이 멀지 않았다.

    ■ 투력(鬪力) - 3단
    어느덧 힘이 붙어 비로소 싸워야 할 상황에서 싸울 수가 있게 되었다.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90파를 하면서 비싼 돈에 장비를 바꾸고 허풍이 날로 심해진다. 페어웨이를 따라 날아가는 공은 애증이란 코어에 슬픔의 껍질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보다 강한 고수와 꾸준하게 라운드하고 다양한 전투를 통해 승부의 감각을 키워야 할 시기다. 이미 각인의 과정을 거쳐 좋은 동반자와 스승이 생겼고 골프를 통해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경험했으니 진정한 초보자(初步者)가 되었다.

    ■ 소교(小巧) - 4단.
    비로소 소박하게나마 기교를 부릴 수 있게 된 단계. 전 판을 살피는 안목은 부족하나 국지전에서 용렬하지만 테크닉을 구사하기도 한다. 80대 중반을 치는 골퍼가 되었지만 필드나 연습장에서 무차별 레슨에 매진한다는 점에서 덜컹거리는 빈 수레와 같은 상태다. 내기골프에 가장 많이 초청되는 데 승전보다 패전이 많다. 골프란 화려함을 동반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줄일 때 가장 좋은 결과를 얻는 운동이란 것을 절감한다.

    이 시기에 고급의 매너와 에티켓을 익혀야 한다. 좋은 매너의 근본은 간단한데 동반자의 고통과 슬픔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나 자신에겐 철저하고 동반자에게 관대한 것이 최고의 매너다. 실력향상이 어렵고 좌절을 많이 하는 시기지만 진정한 골퍼가 되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봐도 무방하다.

    ■ 용지(用智) - 5단
    전투력도 생겼고 판을 보는 눈도 가졌기에 이제 지혜를 쓸 줄 아는 단계. 페이드와 드로우를 구사할 줄 알며 최소한 오비를 내지 않는 곳으로 티샷을 날리는 능력이 생겼다. 눈에 의지하지 않고 머리로 홀에 접근하고, 골프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숏 게임과 퍼팅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가끔은 70대 초반과 중반의 스코어를 기록하며 기고만장해 하지만 아직은 어리석음도 함께 지녀 고수는 되지 못했다.

    기초에 더욱 올 인하고 도전적이란 화두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골프에서 도전적이란 화두보다 더 치명적인 실수를 안기는 요인은 없다. 본격적으로 스윙과 샷의 기술적인 면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도(正道)와 마도의 경계선이라 자칫 주화입마에 빠져 마도(魔道)로 접어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존경받는 고수가 되거나 하수를 괴롭히는 허접한 잡것으로 나눠지는 중요한 단계다.

    ■ 통유(通幽) - 6단.
    말 그대로 그윽한 경지, 골프 때문에 현실의 모든 것을 버렸고 지성(知性)이 마른 망각(忘却)이라는 이름의 강을 건너는 완성의 단계다. 어느 골프장, 어떤 티 박스를 사용해도 70대를 칠 수 있고 가끔은 언더파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골프의 진경(眞境)을 음미할 수 있는 높은 수준엔 도달하지 못했으며 계속 연습을 하지 않으면 스코어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조금 미진(未盡)한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단계 높은 경지로 이끌어줄 훌륭한 스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멘탈의 강화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주도유단에서 6단을 석주(惜酒)라고 하는데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이란 의미다. 골프를 통해 하나의 깨달음에 근접했기에 지인들에게 초월적인 사고로 골프에 접근하라는 조언을 한다. 골프라는 현상의 본질에 접근했고 승부의 요체(要諦)도 터득했다는 점에서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 구체(具體) - 7단.
    골프가 완성에 이른 상태로 평범한 사람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의 단계를 일컫는다. 단점이 없는 골프를 하면서 골프를 통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에 도달했다. 모든 생각을 죽여 의문의 근원을 없앤 경지. 수졸(守拙) 이전의 전생(前生), 마치 골프를 몰랐던 시기처럼 아무런 생각이 없는 깨달음의 상태로 되돌아 간 삼매(三昧)의 초월적 경지를 맛보는 과정이다.

    힘들이지 않고 쉽게 언더파를 치며 한 번의 라운드에 또 다른 한 번의 생을 느낀다. 스코어와 동반자의 행동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인들과 대자연의 기운을 함께 느끼며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 할 뿐이다. 골프의 기술적인 면을 마스터했을 뿐 아니라 한 번의 골프를 통해 조화와 중용의 정신을 체감하는 차원 높은 세계로 올라 가 있다. 자비로운 마음, 희생적인 마음, 겸허한 마음이 어우러져 깊은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해 있다.

    ■. 좌조(坐照) - 8단.
    좌조의 경지는 노력만 갖고는 안 되며 일부 선택된 사람들만이 도달 할 수 있다. 가만히 앉아 보는 것만으로도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과 생성기멸(生成起滅)의 섭리를 깨달았다.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주관도 없고 객관도 없는 그런 경지를 말하는데 그것이 초월의 경지인지 정신이 조금 돈 건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골프를 통해 의혹을 떨쳤고 관조(觀照)와 초월(超越)을 깨달았다.

    마이클 조단, 펠레, 바둑의 이창호, 타이거 우즈, 라인홀트 매스너 정도가 이런 궁극(窮極)과 초월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선 인간과 신의 중간계(中間界)에 고고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좌조(坐照)의 경지에선 핸디캡과 골프실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100개를 치며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고 로우 핸디가 되어서 이런 경지에 오를 수도 있다. 결국 수졸(守拙)이란 시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 입신(入神) - 九단
    이제는 가히 신(神)의 경지에 올랐다. 승부를 초월했으며 승부가 주는 허무(虛無)까지 초월했다. 수행을 통해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 것을 해탈이나 열반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해탈은(解脫)은 결박이나 장애를 벗어난 완벽한 자유를 의미하고 열반(nirvana)은 “불어서 끈다.“라는 의미로 번뇌(煩惱)의 뜨거운 불길이 꺼진 고요한 상태를 가리킨다.

    주도유단에선 9단을 열반주(涅槃酒)라고 하는데 술로 말미암아 다른 세상으로 열반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입신의 경지는 설명할 필요도 설명한 말도 없다. 이미 인간 세상의 영역을 벗어난 절대 초월의 경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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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다니는 연습장에 하루 평균 10박스씩 치는 50대 중반을 넘은 교사가 있다. 10박스를 치는 이유는 분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데 몇 년 전에 6번 아이언으로 가는 거리를 지금은 못가기 때문이다. 구력은 약 10년이 되었지만 툭하면 백을 넘기곤 한다. 하지만 스코어와 골프의 전반적인 부분에 거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오직 6번 아이언으로 잃어버린 거리를 찾는데 지금도 전념하는 것이다. 그는 늘 온화한 미소와 함께 6번 아이언으로 매일 10박스의 볼을 때린다. 프로들이 이런 저런 조언을 하면 진심으로 경청하지만 프로가 가면 바로 6번 아이언을 잡는다.

    그의 온화한 미소, 욕심 없이 골프에 접근하는 사고가 입신의 경지인지 모르겠다. 투력(鬪力)의 단계에서 플롭 샷에 목숨을 걸던 후배가 어느 날 골프에서 진정한 멋은 플롭 샷이 아닌 스코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골프의 가장 큰 매력은 각 단계별로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보다 선생이 많은 스포츠가 되기도 한다. 골프를 잘 치고 싶으면 골프만 사랑하면 된다. 권력이나 재화를 소유하기 위해선 음모와 술수가 필요하지만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선 그냥 골프 자체만 깊이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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