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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 연미사 제비원
    ──•▶발길 따라서/경북,대구 2010. 9. 15. 08:15

     

    가을볕이 따가운 오후

    손끝에 닿을 듯 말듯 간간히 불어오는 섬세한 바람에 예정없이 나선 걸음..

    안동 제비원 연미사 입구에서 메밀꽃에 취한 나비 한마리가 마중을 한다.

     

     

     

     

     

    안동 연미사 제비원과 연이 처녀 이야기

     

    신라시대 고창(古昌)이라고 불린 이 곳에는 당시 원(院)이라고 불리운

    여관이 하나 있었다.

    이 여관에 8살 때 부모를 여의고 심부름을 하는 '연(燕)'이라는

    예쁜 처녀가 있었다.

     

                       연이는 인물이 예쁠 뿐 아니라 마음이 고와서 항상 지나는

                       길손들에게 후대와 적선을 다했다.

                       방에 불도 따뜻하게 지펴 주고 밥도 후히 담아 주었으며,

                       빨래까지 빨아주는 연이는 밤늦게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곧바로 자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글을 익히고

                       내일은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보다 친절하게 도와드릴까 하는

                       궁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 불심도 대단하여, 새벽에 일어나 청소를 마치고 염불을 해서

                      지나가는 과객들로 하여금 그 알뜰한 정성과 고운 마음씨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때문에 이웃 마을 총각들도 모두 남모르게 연이를 사모할 정도였다.

     

    이 원(院)의 이웃 마을에 김씨 성을 가진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남을 동정할 줄 모르는 성미여서 거지를 보는 대로 내쫓는 고약한

    위인이었다. 이렇게 인심 고약한 김씨집의 총각도 연이에게 장가들고 싶은

    마음이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런 부잣집에서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자란 총각도

    이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연이 처녀만은 감히 호락호락 범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다가 이 총각이 비명에 죽어 저승에 가게 되었다

    염라대왕이 인사를 받고 한참을 기웃거리며 명부를 뒤적이다가 겨우 이름을 찾아서는 능글맞게 이르는 말이,

    “아니, 자네는 아직 올 때가 되지 않았는데,

    이왕 왔으니 인정이나 좀 쓰고 갈 마음이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이에 총각이 대답하기를, “지금 전 가진 것이 없는 걸요.”하는 것이었다.

    염라대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을 생각하더니,

    웃으며 총각을 다시 불러 말했다.

     

    “이봐, 총각! 자네는 세상에 적악(積惡)한 사람이라 다음에는

    소로 환생할 것이다. 자네의 창고는 텅 비어 있지만 자네가 사는 건너 마을의

    원에 살고 있는 연이는 착한 일을 하여 창고에 많은 재물이 쌓여 있은즉,

    그걸 좀 꾸어 인정을 쓰고 가렸다.”

     

    이 말에 그 총각은 많이 놀랐지만 다시 살아서 돌아간다는 기쁨에 연이의

    재물을 꾸어 쓰고는 다시 세상에 돌아왔다.

    돌아온 즉시 총각은 연이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자기의 재물을 나누어 주었다.

    이에 연이는 그 재물을 모두 부처님을 위해 쓰리라 마음먹었는데,

    마침 석불이 비바람에 시달리고 있어 도선국사로 하여금 석불을 중심으로 하여 큰 법당을 짓도록 했다.

    그러나 이 공사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어서 5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법당을 짓던 마지막 날, 기와를

    덮던 와공(瓦工)이 그만 잘못하여 높다란 지붕으로부터 떨어지니,

     

    온 몸뚱이가 마치 기왓장이 깨진 것처럼 산산조각이 되었고,

    혼은 제비가 되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에 이 절을 '제비사[燕飛寺]'

    또는 '연미사(燕尾寺)'라 부르고, 이 곳을 제비원 또는 연비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연이는 나이 서른여덟이 되던 해 동짓달 스무 사흗날에

    처녀의 몸으로 죽게 되었다.

     

    연이가 죽던 그 날 저녁, 온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큰 소리가 나더니

    커다란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지금의 돌부처가 생겼다고 한다.

    돌부처는 연이의 죽은 혼이 변하여 생긴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들..

    아름답다..

    가족을..이웃을..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테지..

     

     

    기와 불사..

    기와불사는 자녀들의 머리를 맑게하고

    자녀들의 두뵈를 성장시킨다고 하는데..

     

     

    어찌 불사의 마음이 만원에 족할까마는..

     

     

    바람과 한몸이 되어야만 제몫을 하는 풍경...

    잔잔한 바람대신 내 마음이 바람이 되어...풍경을 울린다.

     

    언덕위의 하얀집...

    주지스님이 기거하는 곳이라고 한다.

    흐트러진 메밀꽃이 스님의 마음처럼 집한채를 받치고 있는 듯...보였다.

     

    귀한 차 한잔 주시겠다 안내해주신 차방...

    표구에는 어떤 사람들의 어떤 마음들이 오고 갔을까??

     

    스님이 머리가 맑아진다며 주신 국화차...

     

     

    국화는 두번 피는 꽃...

    계절에 한번 피고...

    차로 두번...

     

    스님이 주신 국화차에

    머리뿐 아니라 마음도 맑아지는 듯...

     

     

     

    안동 제비원 미륵불  

     

     

     경북 안동 이천동 석불상(속칭:제비원미륵불)은 보물 제115호.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여행객의 편의 제공을 위한 시설인 연비원불사(燕飛院佛寺)가 있어

     사람들이 연미사 또는 제비원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제비원 미륵불은 자연암벽에 신체를 선으로 새기고 머리는 따로 올려놓은

     전체 높이 12.38m의 거구의 불상이다.

     이러한 형식의 불상은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는데,

     머리의 뒷부분은 거의 파손되었으나 앞부분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이 솟아 있고,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어서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진 거구의 불상에서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미련스러움은 보이지 않는다.

     머리와 얼굴 특히 입에는 주홍색이 남아 있어서 원래는 채색되었음이 분명하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몇 개 안되는 옷주름은 매우 도식적(圖式的)으로 표현되고 있다.

     양 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어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을 배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제비원 미륵불은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지방화 된 거구의 불상 가운데 하나로

     당시 불상 양식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성주풀이의 본향(本鄕) 제비원 미륵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대활연(大豁然)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성주야 성주로구나 성주 근본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 땅의 제비원 솔씨 받어
                  공동산에 던졌더니마는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황장군(黃腸君)이 되었구나 조리기둥이 되었구나
                  낙락장송이 쩍 벌어졌네 대활연(大豁然)으로 설설이 나리소서」

     

               위의 가사는 우리 무가의 대명사인 성주풀이의 도입부분이다.

                 성주의 근본이 안동 땅 제비원의 불상임을 알려주는 것이니

                 예로부터 영험함의 대명사로 꼽힌다.

     

     

    미륵불 아래...옹팡지게 옹아리를 틀고 앉은 벌집...

    나무 아미 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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