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흉터 술에 취한 남자가 전봇대에 질척거리는 오물을 토해놓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마뜩찮은지 온갖 욕설을 섞어 쏟아내는 그의 말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했다. 비틀거리던 몸이 중심을 잃고 흔들거리더니 어느새 전봇대에 털썩 기대 “드르릉, 드르릉” 코를 곤다. 크게 한번 들이켰..
주말 아침이었다. 지난밤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는데, 불쑥! 아이들 데리고 함께 나가자며 수저를 놓기가 바쁘게 남편은 외출을 서둘렀다. 어리둥절 해하며 어디를 가는지, 왜 가는지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허둥지둥 바쁘게 움직이는 남편을 지켜보며 말해 줄 때까지 참기로 했다. 아이들과 난, 남편의..
집안이 텅 비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아이들이 나가자 집안이 넓어졌다. 숨쉴 겨를도 없이 집안 곳곳에 스며있던 정적이 휘돌았다. 고요가 발끝에 숨어들었다. 고요에 짓눌려 부엌에서 큰방으로 다시 베란다로 서성거리다 쇼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에 감긴 태엽이 느슨해져 한없이 늘어졌다. 하루..
* 이웃* 아파트 마당은 고즈넉했다. 마당 한 귀퉁이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나무 벤치에 걸터앉았다. 나무마다 잎들이 짙게 물들어 있었다. 손으로 툭 쳤더니 나뭇잎들이 우수수 날렸다. 머리와 어깨에 떨어진 낙엽 몇 장을 책갈피 사이에 끼우고 있으려니, 잠이 덜 깬 얼굴로 앞 동 새댁이 허청허청 발걸..
엄마와 딸 머뭇거리다 문을 열었다. 곰팡내 나는 골방에서 흐느끼고 있는 나를 보았다. 입이 바싹 말라 엄마를 애타게 불러도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퀴퀴한 방에 갇혀 겁에 질린 나와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이 눈에 들어서는 순간, 꿈과 현실 사이에서 질주하는 기차소리가 이명현상으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