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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짝사랑은 일방 통행이 아니다.
    ──•▶문학의 향기/수필 속으로 2006. 3. 5. 06:53
    집안이 텅 비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아이들이 나가자 집안이 넓어졌다.

    숨쉴 겨를도 없이 집안 곳곳에 스며있던 정적이 휘돌았다.

    고요가 발끝에 숨어들었다. 고요에 짓눌려 부엌에서 큰방으로 다시 베란다로

    서성거리다 쇼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에 감긴 태엽이 느슨해져 한없이 늘어졌다.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청소를 하고, 다림질을 해도,

    베란다에 빨래를 널어놓고 집안구석 구석 윤이 나도록 닦아도,

    시간은 오전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화초에서 붉으락푸르락 꽃이 피었지만,

    사다 키울 때의 마음은 온데간데없다. 하루하루가 아무 의미가 없다. 

     

    적응력을 잃은 감기만큼 깊은 외로움이 개였다.

    을씨년스럽게 부는 바람에 희미하게 떨고 있는 허전한 기운이 내 외로움의 더께로

    집안에 덕지덕지 쌓였다.

    외로움의 무게가 벽을 타고 뒤엉겨 줄기를 내리는 스킨다비스처럼 내 삶이 얽혀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답답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흔하디흔한 인터넷의 사랑을 빌려서라도,

    단조로운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미묘한 감정의 흐름에 마음을 맡겨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느닷없이 두통이 찾아들었다.

    관자놀이 근처를 쑤시게 했고, 정수리 쇠못하나 박힌 듯 했다.

    진통제를 먹어도 지긋지긋한 두통은 멎지를 않고 더욱 심해졌다.

    너무 아파 몸이 새우처럼 웅크려들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평범한 아침, 고요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장대비가 왁자글하게 내렸다.

    후드득거리는 장대비가 살갗을 파고들 듯 세차게 내려 우산 속에서도 비를 맞는다.

    비는 하늘을 적시고, 땅을 적시고, 공기를 적시고, 발가벗은 나를 적신다.

    장대비를 맞고 내안의 날짐승을 풀어놓은 듯 마음은 울부짖고 있었다.

    온몸 깊은 곳에서 각혈이 터져 나와 아픔과 질곡 많은 사연을 토해낸다.

    몸속에 잠재된 동물적인 욕정의 본능을 자극하기도 한다. 몸의 세포들은 불면을 호소한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아픔이 무엇 때문인지를 알기까지.

    고통 속에서도, 외로움 속에서도, 고요 속에서도 불현듯 떠오르는 것, 그것은 사랑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정신없이 끌려가는 글에 대한 짝사랑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외로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거칠게 몰아치는 장대비가 되기도 했으며

    지독한 두통의 원인으로 내가 필연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감정의 표현이었다.

    심장이 천천히 뛰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자유롭게 꿈을 꾼다.

    장독대위에서 놀고 있는 햇살 속에서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속에서도,

    아이들이 놀다간 공터에서도 나는 글을 생각하며, 막연한 그리움이 아닌 희망을 품는다.


    뚜벅 뚜벅

    혼자 산에 올랐다. 낙엽들의 삭은 내음이 발끝에 스며든다.

    나무 사이를 군데군데 거미줄이 쳐있다.

    명주실처럼 얼기설기 쳐놓은 거미줄이 어릿어릿 햇살에 빛난다.

    거미줄에 매달려 거미줄을 짠다. 거미는 내 삶을 뿜어내고 있다.

    사라진다 해도 또다시 만들어야 하는 삶의 거미줄이다.

    그것은 글이 된다. 글은 나의 짝사랑이다.

     

    나의 짝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까이 갈수록 더욱 나를 감동시키고,

    머릿속을 진부한 고통 속에서 해방의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사랑이다. 

    이제 나의 짝사랑이 익숙해지며, 사랑해라며 귓가에 속삭인다.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음악을 들을 때도, 말을 하고 있을 때도,

    길섶을 거닐 때도, 나는 글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아직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은 텅 빈 집안이 내속에서 뿜어낸 거미줄에 매달려

    새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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