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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흉터
    ──•▶문학의 향기/수필 속으로 2006. 4. 3. 00:15
    흉터


     술에 취한 남자가 전봇대에 질척거리는 오물을 토해놓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마뜩찮은지 온갖 욕설을 섞어 쏟아내는 그의 말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했다.

    비틀거리던 몸이 중심을 잃고 흔들거리더니 어느새 전봇대에 털썩 기대 “드르릉, 드르릉” 코를 곤다. 크게 한번 들이켰다가 짧게 끊어 몇 번, 탄식과 원망이 뒤섞인 듯 쉭쉭거리는 숨소리가 거칠다.

     

    외면한 척 잰걸음으로 돌아서려다 슬그머니 남자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눈웃음을 살포시 만들어 낼 것 같은 눈, 가련한 콧날에 앙다문 얇은 입술. 생김새는 새색시 얼굴이었다.

    깨워주지 않고 외면한들 무슨 일이야 생길까 딴청을 피웠지만 마음은 짐을 이고 있는 듯 무겁기만 했다.

    남편과의 첫 대면은 움츠러들었던 나의 숫기에 반기를 들었다. 걸음을 멈칫거리게 하였지만 조금도 흔들림 없이 자취방으로 향했다.

    고향집에는 아버지도 오빠도 술을 즐기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날도 굴곡 없이 그런대로 평탄한 삶이었으니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의 모습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스물 살이었다. 갈래머리가 파마머리로 바뀌었던 대학 1학년이었다.

    만산홍엽이 짙어진 가을날, 동아리 모임을 마치고 자취방으로 가기위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앞  버스정류장은 붐볐다. 투쟁이라는 게시물이 군데군데 늘려 있었고 각종 홍보물이

    발밑에서 아픈 소리를 내며 발뒤축에 매달려 왔다. 사통팔달 늘어선 학생들 사이에서 낮 익은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안다는 듯 나를 향해 움직이는 몸놀림에 슬몃슬몃 몸을 비켜섰다. 그날 술에 취해 한탄하며 비틀거리던, 초췌한 얼굴이 방금 전의 일처럼 잊혀지지 않고 따라다녔다. 그날이 남편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옆으로 비껴서면 마주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 했었는데 인연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오그려 모은 손에 통기타 가수의 입장권을 쥐어주었다. 그때 스친 손의 온기가 부부의 연으로 이어질 줄 몰랐다. 연애를 하는 동안 남편은 감탄사와 느낌표, 그리고 말없음표를 절묘하게 대치해놓은 사람이었다.

     

    남편의 얼굴에는 빰에서 턱 아래까지 흉터자국이 있었다. 바깥쪽의 흔적은 안쪽의 흔적보다 훨씬 뚜렷하게 크고 둥그스럼 하면서 길게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남편과 몇 번의 만남을 가졌지만 얼굴의 절반 가까이 생긴 흉터를 보지 못했다. 그것은 넓고 깊었지만 드러나 보이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술에 일그러진 것보다 흉터가 휘저어 일그러진 모습이 첫 만남의 느낌임을 그때야 알 수 있었다.

    앉은뱅이 걸인을 향해 입었던 점퍼를 벗어주던 사람, 기차를 놓친 장애우를 따라 나서던 사람, 독거노인들의 말동무가 되어 주던 사람. 남편은 자신을 희생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남편 얼굴의 흉터는 과 친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별의별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남편은 흉터에 대해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았다. 나도 묻고 싶지 않았다. 혹여 다른 사람들의 입소문처럼 흉한 일에 연류된 것이라면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좋지 않은 상황으로 치달아 황무하게 버려진 남편을 보담아줄 자신이 없었다.

    3년 군복무를 마치고 학교로 찾아 왔을 때 남편은 얼굴의 흉터에 대해 입을 열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 논과 밭들이 추위 맞을 준비가 한창 일 때 삭은 비닐하우스가 허물어지며 폐비닐을 소각했다 한다. 동네 모퉁이에서 매캐한 냄새를 피우며 타들어가던 비닐이 채 꺼지지 못한 불씨 속에서 바람에 흩날려 남편의 얼굴에 붙어 버렸던 것이다. 응급조치의 상식이 없었던 시골 사람들이라 얼굴에 붙은 비닐을 억지로 떼어 내었던 것이 흉터를 크게 했고 남편에게는 오랜 시간 삶의 무거운 짐이 되었다 한다. 얼굴의 흉터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을 것이다.

    공부도, 운동도 어느 것 하나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다는 남편은 사춘기를 보내면서 일그러진 얼굴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얼굴 흉터는 고목 껍질처럼 거칠고 갈라져서 이성의 친구들은 남편에게 거부감을 나타냈다 한다. 돌로 밀고나면 나무의 거친 면이 대패질에 밀려 나가듯 얼굴의 흉터도 깎여 나갈 것이라 피가 나도록 밀었다 했다. 곪고 멍든 상처가 웃자란 손톱 끝에 생긴 멍처럼 아려 심한 열등감과 상처투성이의 남편이었다. 마음보다 외모로 평가하는 외부의 시선이 비관적인 생각으로 거친 말과 행동을 만들고 스스로 힘들게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외모에 대한 편견은 상대에게 치유 할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외모만 쫓다가는 보면 정작 중요한 마음은 볼 수 없게 된다. 외모가 눈과 말초신경을 만족시켜 주는 값어치로 사람이 평가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남편은 열 두 번의 수술을 했다. 일그러진 얼굴이 조금씩 펴지면서 낯빛이 변했고 남편의 마음도 다림질 되어 갔다. 가끔 거울을 들여다보며 웃을 줄도 안다. 무엇보다 생각에 변화를 보였다. 긍정적인 사고로 자신감을 보이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마음의 상처를 벗고 묵정밭에 흙더미를 채우듯 마음 밭도 일구며 산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따뜻한 심성을 베풀 줄 안다. 사람을 기피했지만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얼굴 가득 미소로 화답한다.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묻어난다. 편안해 보인다.

    이제 한번의 수술만이 남았다. 마지막 수술은 그동안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상처를 훌훌 털고 새 살을 채우는 마지막 구조조정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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