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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는 선택이 아니다. (퇴고전)
    ──•▶문학의 향기/수필 속으로 2006. 4. 12. 05:35
     

    장애는 선택이 아니다.                                      


    불혹을 바라보고 있다. 나이가 주는 안정감과 소중함은 그 자체로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별 탈 없이 꾸려온 삶이었다. 5월이면 손바닥만한 마로니에 잎을 보며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이야기하고 가을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무성하던 그곳에 가을 하늘의 노을빛의 절정을 담아놓았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아이들은 제 나이만큼 몸도 마음도 쑥쑥 자랐고 남편도 건강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렸고 가족들 이름에 숫자마다 알록달록 그려넣은  하트 표시가 행복의 가치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은 일순간 무너졌다.

    지난해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거센 홍수에 떠밀려 내 일상이 연기처럼 흩어져 버린 듯 했다. 살면서 고비가 있다 했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힘이 들었다.

    안동에서 대구 경대 병원으로, 서울 삼성 병원으로 절망의 터널 속에 갇힌 듯 했다.

    그날도 수술 전 검사를 받기위해 서울로 갔을 때였다. 치료라도 제대로 받길 원했다. 그러나 보험회사는 뺑소니 사고를 인정하지 않았고  일을 미루기만 했다. 결국 하루 만에 병원 일을 보지 못하고 지체되었다.

     

    하룻밤을 일산에서 묵고 서울 삼성 병원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교통사고로 목을 다친 남편은 병력이 완연했다. 남편도 나도 지쳐 있었다. 남편 병간호에, 집안일에, 아이들 보살피느라 몸과 마음이 시달릴 대로 시달려 있었다. 몸이 천근이었다. 지난밤은 여남은 시간 잔 것 같다. 긴장 때문인지 묵직한 통증이 발목에 파고들었다. 발목에 나 있는 검은 멍을 치료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남편의 손발이 마비가 왔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예약시간을 맞추기에도 병원까지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남편은 소란스러움을 피해 장애인, 노약자석이란 글귀 밑 구석진 곳에 자리는 잡았다. 창백한 낯빛이 파르스름하기까지 했다. 남편은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들어 나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다. 어느새 지하철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그때 사람들 사이를 밀치고 육십 즈음 되어 보이는 노인이 앞 칸에서 옮겨왔다. 불쑥 경로석이란 글자가 안보이냐며 빈정거린다. 노인의 억척소리에 다른 이들의 시선을 느끼며 움츠러든 몸을 일으켰다. 당황스러웠다. 모닥불을 뒤집어 쓴 것처럼 얼굴이 화끈 거렸다. 그대로 우겨대 볼까 생각을 했지만 참기로 했다. 문뜩 억울할 만큼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변명하지 못했던 것보다 나의 절박한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다른 사람이 어떠한지 아랑곳없이 우겨대는 노인이 원망스러웠다. 넘어지지 않으려 손잡이를 꽉 잡았다.

    흔들거리는 손잡이를 보며 가슴 저리게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신입생 환영회 겸 등반 대회가 한창이었다. 청도 운문사로 가는 버스 속은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로 꽉차있었다. 마침 오일장이라 장을 보러 나오신 할머니가 유난히 많았다.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나 운전석 뒤 의자에 앉은 총각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 한분이 짐 보따리를 이고 올랐다.

    좁은 시골길은 비포장 길이었다. 버스는 한 시간을 덜컥대며 달렸다. 산굽이를 돌자 할머니는 몸의 중심을 잃고 심하게 흔들렸다. 할머니의 움직임이 심해질수록 차 속은 희미하게나마 비난의 낌새가 끼어들었다. 젊은 총각을 향해 가시 돋친 말보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머뭇거리며 총각이 몸을 일으켰다. 순간 형언 할 수 없는 애처로움과 덮쳐오는 죄의식이 다가섰다. 총각은 한쪽다리가 눈에 띄게 짧았다. 주머니 속에 감추어진 손은 흉했다. 전기에 감전된 듯 정지된 사람들의 모습과 총각의 싸늘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총각은 한 시간 넘는 시간 내내 자신에게 쏟아지는 타인의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사람처럼 견디고 있어야 했을 마음의 상처는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총각은 장애인이다. 장애는 선택이 아니다. 누구나가 당할 수 있는 아픔이다. 장애인은 소외 계층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가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쩜 장애를 보는 우리의 시선이 장애가 아닐까 반문해본다.

    옛말에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이는 덤이 아니다. 노인에게서는  배려도, 기다림도, 따스함도 찾아 볼 수 없다.

    누가 노인이 비 장애인이라 할 수 있으며 총각을 장애인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노인은 마음이 비틀어진 장애인이다. 건강한 마음이 없는 것도 장애인이다.

    장애는 결코 선택이 될 수 없다.

    헝클어진 삶에 햇살이 드리운다.

    잠든 남편의 얼굴에서 편안함이 묻어난다.

    상처를 치료하며 집과 세상과의 경계인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한줄기 인생이 궂은 땅을 헤치고 나오듯 남편의 상처에도 희망의 꽃이 피어 진한 향을 뿜어 낼 것이란 소망을 잃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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