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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라는 여인
    ──•▶문학의 향기/수필 속으로 2008. 9. 7. 23:43

     

     

     

    연일 폭염주의보가 들려왔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 여름도 끝 가눌 수 없이 비가 험하고 폭염이 지독했다.

    상여가 나가는 날은 골목어귀로 갑자기 매지 구름이 불더니 삽시간에 주위가 어두워지고 작달 비가 노드리듯 퍼부었다. 폭우에 장지로 가는 길이 쓸리고 밀려 상여를 실은 차가 장지까지 오르지 못해 친척들과 친구 분들이 상여를 매고 산을 올라야 했다. 상여 뒤를 따라 기슭을 올라갈 때는 장맛비와 눈물이 뒤범벅되어 볼을 타고 한없이 흘러내렸다. 천지를 집어삼킬 듯 우르르 뿜어내는 빗소리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을 대신해 목 놓아 울어주는 듯 고막을 흔들어댔다.

    그렇게 아버지를 묻고 20년이 지났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세월을 보냈지만, 친정아버지의 부재를 받아들이기에 20년이라는 세월은 짧았다.

    몇 해 동안은 친정 대문을 들어서면 흰 모시 적삼을 입은 아버지가 마중할 것 같았고 아버지와 자주 나갔던 강둑과 도서관에는 금방이라도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다가와 손짓할 것 같았다.

    그러다 음력 7월 4일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면 상상을 인지하고 현실로 걸어 나왔다.

    친정아버지의 기일을 이틀 앞에 두고 부산에 사는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아, 잘 지내제, 밀양 언제 갈꺼고..

    밀양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눈은 자연스럽게 앉은뱅이 달력으로 갔다.

    음력 7월4일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아버지. 가슴으로부터 뜨거운 뭔가가 울컥 목젖으로 차오르는 것을 간신히 되 삼켰다.

    동생이랑 큰 언니는 일요일에 밀양으로 간다고 했다.

    나는 교수님과의 선약으로 월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야 도착할 같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밀양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친정에는 큰언니랑, 오빠, 동생, 올케가 먼저 와 있었다.

    큰언니와 막냇동생이 제사준비 장을 보았다고 했다.

    올케는 기일 음식준비에 손놀림이 바빴고 오빠는 오후에 도착했다며 제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아버지 제사에 오랜만에 5형제가 다 모였다.

    아버님 살아생전에 형제간의 우애를 최고의 기쁨으로 생각하셨기에 기일에 형제가 다 모인 것은 무엇보다 흐뭇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가 떠나신지 20년이 지났지만, 기억의 편린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사라지지 않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제사를 지내고는 바로 경산으로 차 머리를 돌려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몰두하다 청도를 지나면서는 오빠가 얼마 전에 아버지가 꿈에서 어머니를 걱정하시더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도 비슷한 꿈을 꿨기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고 무거웠다. 알 수 없는 불안이 쇠로 만든 코르셋을 입은 것처럼 온몸을 꽉 죄는 느낌이 들었지만, 의도적으로 불안함을 떨치려 머리를 흔들었다. 

    시험과 함께 학기가 끝났고 동기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동으로 가려고 짐을 꾸리고 있었는데 작은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아, 수업 잘 끝났나?

    대답보다 가슴이 먼저 두근거렸다.

    궁삿거리던 언니가 겨우 말을 이었다.

    엄마 병원에 입원했어.

    순간 한기와도 같은 전율이 온몸을 엄습했다.

    수면 밑에 있던 알 수 없던 불안이 때를 기다린 복병처럼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흐트러진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엄마의 상태를 물었다.

    뇌경색, 중풍 초기라고 했다.

     병원으로 갔을 때는 마음이 더 무거웠다. 사흘만인데 한눈에 보기에도 얼굴이 초췌하고 병색이 완연했다. 무엇보다 말문이 열리지 않아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셨다. 의사는 일찍 발견이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지만 무거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오빠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돌보신 것 같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사 하루 전날 큰언니가 밀양에 도착해서 어머니를 만났을 때 뭔가 부자연스러웠다고 했다. 말은 어눌하고 즐겨 드시던 회랑 메밀국수는 한참 씹고 나서야 삼켰고 가끔 입가로 음식물이 흘러내리기도 했다는 말을 했다. 늘 옷매무새가 정갈하고 차분하게 갈무리된 모습이라 이상증상을 느껴 근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이른 시일에 큰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의사의 처방을 받았고 다음날 부산에 있는 동의 의료원에 바로 입원을 했다는 것이었다.

    기일에 갔을 때도 큰언니 외에는 누구도 엄마에게서 이상을 느끼지 못했던 변화를 큰언니는 어떻게 알았는지를 듣기 전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부산동의 의료원으로 가시는 차 안에서는 하염없이 우시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작은 언니는 울먹였다.

    그러고 보니 이미 증상이 나타났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가을 입맛이 없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밀양 표충사 근처 음식점에서 오리고기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입가로 음식물이 흐르는 것을 본 딸아이가 할머니에게 물수건을 연거푸 건네  주었던 것과 두어 달 전에는 다리에 힘이 풀려 문이 닫히는 것을 피하지 못해 발뒤꿈치가 심하게 팼던 일, 전화 목소리가 선명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에 전화기 고장이라며 핸드폰을 교환한 일등이 뇌경색의 초기증상이었구나 싶었다.

    지난해 학교일이 너무 힘들어 어머니에게 마음 쓸 여유가 없어 무심했구나! 생각이 들어 죄송스러웠다.

    퇴원을 하시면서는 혼자 생활하시는데 무리가 없을 때까지 오빠네 계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 했지만 내 집이 편하다 하시며 한사코 밀양 집으로 내려가시는 걸 보고 가슴 한켠 묵직한 통증이 일었다.

    살아계시는 동안은 아버지와의 신뢰로 함께했던 집에서 지내시는 것이 편하다고 했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셨음을 평소 어머님의 성정으로 짐작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며칠 동안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대부분 시간을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5남매가 자랄 때의 향수를 떠올리며 보냈다. 눈에 띄게 야위었지만, 이야기를 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에 깃들여진 표정만은 평화롭고 온화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곱게 머리 빗질을 하시는 어머니.

    반백의 머리 위로 햇살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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