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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통의 편지...
    ──•▶문학의 향기/수필 속으로 2006. 7. 7. 09:55

    한통의 편지.

                               

    누구에겐가 예기치 않은 편지를 받게 된다는 어떠한 마음이 들까?

    꿈 많은 여고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이라면 예쁜 편지지를 차곡차곡 모으는 재미를 알 것이다. 어떤 필요에 의해 편지지를 모은 것이 아니었지만 예쁘고 고운 편지지가 서랍 속에 가득 찰 때면 소중한 이들에게 소식을 전하곤 했었다.

    곡예를 하듯 갈겨 쓴 필체였던들 실타래처럼 풀려 나온 고운 사연들은

    서로의 마음에 전해져 따뜻하고 정갈하게 다가섰다.

    그러나 애지중지하며 편지지 모으는 재미도, 볼펜으로 적은 편지를 받아본 것도

    언제였던가 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 적응의 방식으로,

    발달된 문명의 대명사처럼 익숙해진 컴퓨터의 편리성에 자연스럽게 편지라는 것이

    메일이라는 것으로 바뀌어 버린 요즘이다.

    처음에는 컴퓨터라는 기계를 통해 소식을 전하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상의 일처럼 모든 일을 메일로 전하고

    컴퓨터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게 되었다.

    펜이 아닌 자판 속에서 감정을 이야기 하고 추억을 되돌아보는 것이 좋다 할 수는 없지만

    나의 일상에서도 이젠 컴퓨터를 가지지 않고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이 변해가고 있다.

    며칠 전 학교를 마치고 현관을 들어서는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차

    상기된 얼굴로 들어선다.

    학교에서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었나하는 짐작만 할 뿐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아이를 다구쳐 묻지 않았다.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 입을 열 것을 알기에 내심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지만

    하루가 다 가도록 아이는 속을 내어놓지 않는다.

    도대체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얼굴에 함빡 웃음을 짓게 할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봐도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난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울린다.

    시아버님의 전화였다. 아침 문안도 드리기 전에 아이를 바꿔 달라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한참을 이야기가 오고 가는가 하더니

    며칠 전처럼 아이의 얼굴은 박꽃 같은 미소를 짓는다. 엄마의 표정을 알아차린 듯

    그제서야 말문을 여는 아이의 이야기는

    며칠 전 할아버지에게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랑하는 나의 손녀딸 진원이 에게” 라고 격식을 갖추어 정성스럽게 시작된 할아버지의 온정이 담긴 편지를 읽고 밤새 긴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는 것이다.

    시부모님은 어린 손녀가 보낸 정성스런 편지를 받고 고마웠다는 말과

    언제나 자랑스러워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아침 일찍 전화를 하신 것이다.

    딸아이는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며칠을 행복해하면서

    보물 상자에 보관된 편지를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한다.

     

    십년 전 낯선 곳 안동에 둥지를 틀던 날이 생각난다.

    유교적인 전통과 선비정신의 뿌리가 깊어 무겁고 낯설게만 다가섰던 시부모님들.

    옳은 풍습을 가르치고 사람의 도리를 깨우쳐 주시려 던지시던 한마디 한마디가 그렇게 서럽고 섭섭하기만 했다.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보다 그저 옛것이 익숙해 변화하는 현실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지난날 이었다.

    그러나 시어른들은 속정으로 언제나 자식과 손녀 손자를 생각하고 사셨음을 불혹을 바라보는 이제야  아이의 눈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음이 못내 죄송스럽기만 하다.

     

    핏줄이란 무엇인가? 강물도 근원이 맑아야 아래도 여유롭게 흘러가는 것이다.

    어른들은 그들이 젊어지지 않음을 알아 핏줄에 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데 

    우리는 늙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쉽게 자식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지나 않은 것인지...

    아이의 눈을 통해 시어른에 대한 효도의 마음이 어떠한 것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시어른이 보내온 한통의 편지처럼 내 손녀에게도 아름다운 세상의 이야기를 해주며

    그들을 인정하고 격 있는 사람으로 존중하는 마음을 심어 줄 수 있길 바랄뿐이다.

     

     

     

    아버님 전화를 받고 시내로 나갔더니

    오토바이 가득 오이,상추, 호박, 깻잎등이 든 봉지를 손에 들려주셨다.

    가까이 살면서도 너무 소원했구나...

    오늘은 황제의 밥상보다 더 풍성한 밥상이 목젖을 울컥이게 한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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