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줄 끊긴 이어폰
    ──•▶문학의 향기/수필 속으로 2006. 6. 5. 07:21
        
        줄 끊긴 이어폰 
        좀 전에 전화를 주시면서 동행할 아이가 있다 하셨는데, 
        바로 출발 하셨는지, 차는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4층 계단을 급히 내려와 수녀님을 맞았다. 
        가정폭력상담원을 그만 둔지가 6개월이 지났는데도, 
        불과 며칠 전에 본 듯 반가웠다.
        그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차창에 비친 아이는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차에 오르자 인기척에 놀랐을까. 
        허둥거리는 몸짓으로 나를 보는 듯 하더니, 
        이내 길게 하품을 한다. 
        낯선 사람이 못마땅했는지 미간을 찡그리는 아이는 
        줄 끊긴 이어폰을 꽂고 있었는데, 
        한눈에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책갈피에 접힌 꽃잎처럼 수녀님과 
        제 엄마사이에 앉은 아이의 동공은 
        초점이 없어 보였다. 
        소리도, 움직임도 정지된 석상인 듯 무표정이다. 
        잠시 정지된 시간처럼 차안을 무겁게 누르는 공기, 
        납덩이같은 무게로 한 공간이 까맣게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비포장 길로 들어서자 차가 속력을 낼 수가 없었는데, 
        무겁게 입을 다물고 앉아 있는 나에게 수녀님은,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들릴 듯 말 듯 낮은 소리로
         "자폐아"라고 일러주셨다. 
        자폐와 간질을 앓고 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훔쳐본 아이는 
        일그러진 얼굴에 무질서한 입의 동작. 
        희다 못해 파르스름한 빛까지 쏘아져 나올듯한 피부, 
        덜 여문 대나무처럼 휘어진 손가락이 애 닳기만 했다. 
        이마와 양미간에 듬성듬성 꼬맨 상처투성이가 
        열 살 아이의 얼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하루에도 서너 번 발작으로 스스로 긁힌 상처가 
        얼굴뿐 아니라, 
        여기저기 뚜렷하게 보여서,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이가 힐끔 나를 보는데, 
        순간 온몸에 털이란 털은 모두 곤두서며 
        섬짓 겁이 났다.
        수녀님과 아이 엄마는 아이를 자애복지관 보호시설에 
        맡기러 가는 길이라 했다. 
        그리고는 아이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있도록 말을 이었다. 
        아이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등졌고, 
        이 엄마의 자식 셋 중에서 첫째만 빼고 
        둘은 장애를 가진 아이라 했다. 
        막내로 태어난 아이는 자폐와 간질이 심하고 
        바로 위의 누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데, 
        어린 동생이 미웠는지, 
        그 누나가 십 일 개월 된 아이를 
        세탁기에 넣어 돌려 버렸다 했다. 
        그때부터 간질 증상이 생겨난 것 같다며, 
        수녀님은 한숨을 내 쉬셨다. 
        끝없는 자기희생, 이런 것이 어머니의 모습임을 
        익히 알고는 있지만, 
        이 현실이, 나의 상황이었다면..."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는 건강한 자식을 주셨습니다." 하는 데에 이르자, 
        문득 이 들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포기하지 않는다 했다, 아이 엄마는.... 이런 것일까, 
        어미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이 엄마는 십 년을 한결같이 
        아이의 손발이 되어 돌보아 왔지만, 
        아이만 붙잡고 있을 형편이 아니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있다고 했다. 
        아이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으면서도 
        아이의 손을 무릎 위에 놓고 
        폈다 접었다하면서 한사코 아이의 손을 놓지 못했다. 
        가슴이 저려 무어라 드릴 말씀을 찾지 못했다. 
        무거운 짐을 진 듯 하였으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두 시간 여 만에 도로를 벗어나 섶길로 접어들었는데, 
        전형적인 시골 모습이다. 주위는 조용했다. 
        복지관은 건물과 건물이 엇비슷이 마주 서 있었다. 
        작년 겨울 가정폭력상담원 교육에 함께 참석했던 선생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이내 아이를 상담할 선생님에게 아이를 인사시켰다. 
        한 시간 여 동안 상담은 계속 되었고, 
        아이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했다. 
        친분을 가진 선생님이 있어 안심이 되었지만, 
        아이엄마는 아이가 볼까 시선을 돌려 연신 팔소매로 
        눈자위를 꾹꾹 눌러 눈물을 닦았다.
        어느새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상담을 하는 것이 힘이 들었던 것 같다.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다 잠들었을까? 
        씩씩거리던 압력솥 꼭지처럼 통제할 수 없는 아이, 
        자기표현을 예측하기 힘든 아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아이,
        세상의 이해를 잊어버리고 사는 아이는 
        감각 결핍으로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어쩜 자신 속의 미세한 감각의 과잉 상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한다. 
        자폐를 가진 아이를 직접 대하기 전에는 
        자폐가 신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작은 모래알 하나, 흩어진 티끌 하나.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을 가지고 노는 그들의 세계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막상 그런 아이와 가족을 보면서, 그런 사치스런 생각이, 
        평생을 눈물과 아픔으로 살아야 하는 아이와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너무 죄송한 마음이었다. 
        대인 관계에서 고립의 연속선상에 있는 아이를 본 하루가 
        너무 힘든 숙제로 남았다.
        사람을 보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아이, 
        타인의 관심도 모르는 아이, 
        아이를 두고 나오기 전 아이의 시선을 읽으며, 
        그곳이 버림받은 아이들의 시설이 아닌 보호하기 위한 곳임을 
        그 엄마에게 설명하지도 못한 채, 
        그저 바라다 볼 수밖에 없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무능해 보였는지 모른다. 
        찬바람을 맞고 싶어 문을 활짝 열었다. 
        갑자기 시큰해오든 콧등위로 휑한 바람이 지나간다. 
        아이를 스쳐갈 바람의 움직임을 느끼며,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어두운 세계에서 날갯짓하는, 
        그런 아이들에게 스스럼없이 선뜻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오늘도 나는, 저 수평선 너머 어디쯤 있을지 모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듣기 위해 
        줄 끊긴 이어폰을 꽂고 사는, 그 아이를 생각해본다. 
        그 슬픔을...                           
                         상아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최우수작)
         
        		
    아바타정보|같은옷구입
    봄상품 50%세일전


    '──•▶문학의 향기 > 수필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필 시대 등단  (0) 2007.12.19
    한통의 편지...  (0) 2006.07.07
    아버지의 의자  (0) 2006.06.03
    장애는 선택이 아니다. (퇴고전)  (0) 2006.04.12
    흉터  (0) 2006.04.03
Designed by Tistory.